경제민주화 일방공세에서 약간의 밀당 가나

[헤럴드경제=김영상ㆍ조민선 기자]“대선후보 오늘 온다지?” “그러게, 경제민주화 톤 좀 누그러지려나?” “무슨, 뺨치고 어르는 거지.”

8일 재계단체에서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같이 대선후보를 입에 올렸다. 대선 화제는 늘 있어왔지만, 이날은 특히 더했다.

이날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했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한상공회의소로 향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일자리창출 방안 발표 차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 아마 재계단체가 있었다면 그 역시 상대 후보 일정을 의식해 무조건 발걸음을 그 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대선후보들은 이미 일부 재계단체를 방문, 스킨십을 가졌다. 다만 이날은 안 후보가 대선후보 처음으로 대기업을 회원사로 둔 전경련을 방문했고, 박 후보는 대한상의에서 경제5단체장을 한꺼번에 만난다는 점에서 업계나 기업인들의 시선을 유독 끈 것이다.

이러다보니 경제민주화를 한창 부르짖으며 재계 특히 대기업과 각을 세우던대선후보들이 왜 하루 한날 동시에 재계단체를 찾는지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던 것이다. 만남 총평은 다양했다. 캠프마다 차이는 있지만, 오너의 집행유예 금지, 순환출자 금지, 대기업집단법 등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총공세가 잠시 수그러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지만, 역시 ‘이벤트성 만남 제안’이었다는 실망감도 뒤따랐다.

확실한 것은 이날 대선후보의 재계단체행은 중도보수층을 껴안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 반영됐다는 점이다. 단일화에 급한 쪽도, 보수 굳히기에 급한 쪽도 요동치는 대선 시나리오 와중에서 재계단체와의 ‘무한(無限) 각 세우기’는 부담이 됐을 것이다.

다만 최소한 이날 만남에서 경제민주화 흐름이 바뀔 조짐은 없었다.

안 후보는 이날 전경련 회장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선(先) 자율유도-후(後) 강력조치’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재벌의 자발적인 개혁과 선도적 역할을 당부했다. 박 후보는 경제5단체장에 경제민주화는 기업은 물론이고 근로자, 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할 예정이다.

경제민주화가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당위성이라고 역설하는 대선후보와 톤 조절과 시기의 잠정 유예를 바라는 재계단체 간의 간극은 여전했던 것이다.

물론 양자의 성과는 있었다. 캠프는 최소한 경제민주화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고, 재계로선 경제민주화 수위와 중도보수층 표(票)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보의 빈틈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대기업 개혁을 주창해온 안 후보가 전경련에 만남을 제의했고, 이날 방문이 이뤄진 것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경제민주화 논란과 별도로 대기업과 스킨십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꼭 안 후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박 후보나 문 후보 캠프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박 후보나 문 후보, 안 후보 캠프에선 최근 ‘내년 저성장 속에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위기 극복이 최대 숙제인데 주요파트너인 기업을 마냥 죄인시하고 밀어부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대립만 하게 되면 집권 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데 진지한 생각에 돌입한 것 같다”고 했다.

경제민주화의 옳고 그름과 재계의 반발 여부를 떠나 국민들이 피로증을 느낄만큼 신선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캠프의 판단도 읽혀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관측들을 재계로선 굳이 성과라면 성과로 꼽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캠프와 재계는 여전히 ‘동상이몽’ 흔적이 짙다. 캠프는 대기업 개혁은 포기할 수 없는 명제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캠프와 대기업 간 존재했던 일방적 공세에서, 표심과 협력 측면에서의 상대방 필요성을 일부 인정한 ‘밀당(밀고 당기기)’관계가 들어설지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