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무속인 · 역술인 대선 예언 들춰보니
대한민국 대선의 결과는 철저한 승자 독식 구조다. 패배한 대선 후보도 타격을 입지만, 패배한 후보 측에 줄을 댄 정치인도 향후 정치 생명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선이 다가오면 유명 무속인과 역술인들의 집은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역술인도 예측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예측이 적중하면 ‘족집게’란 찬사와 부가 따르지만, 빗나가면 체면을 구김과 동시에 썰물처럼 손님이 빠져나간다. 무속인과 역술인들 또한 정치인들 못지않게 역대 대선에서 수없이 희비를 오갔다.
1970~80년대엔 역술인 박재현 씨가 ‘박도사’란 별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태준 전 총리가 자주 그의 자문을 받았다고 알려져 더욱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역술인과 무속인이 대선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2년 선거부터다. 1987년 대선까진 군사 정권의 기세에 눌려 무속인과 역술인들도 입조심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민주화와 자유화의 바람 속에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정치인들이 무속인들을 많이 찾았다. 당시 유명 역술인과 무속인들이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사주는 ‘진술축미(辰戌丑未)가 모두 들어 있는 제왕사주”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일부는 “양김 시대는 끝나고 정감록(鄭鑑錄)의 ‘정도령’ 시대가 왔다”며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의 우세를 점치기도 했다. 역술인들 주변엔 막대한 돈도 오갔지만, 예측이 엇갈리면서 이들의 운명도 엇갈렸다.
1997년 대선에선 많은 역술인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자신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부만이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우회적으로 예견했을 뿐이다. 세 번 대선에 실패했던 김 후보는 선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한 후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풍수지리학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현대 산업사회의 역설이라고 할 만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선거를 3개월 앞두고 한 매체가 역술인 5명의 예언을 실었으나 아무도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지 않았다. 당시 노 후보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곤두박질친 상황이었으나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였다. 대선 후 한 대학 교수가 대선 후보들의 선영을 둘러보고 “노무현 후보 선친의 산소가 풍수학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7년 대선에서도 많은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낙마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이 후보의 낙승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2012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으면서 또다시 ‘대세론’에 휩싸였던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다. 하지만 무속인과 역술인들의 예측은 저마다 제각각이어서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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