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풀리지않는 국내·외 미제 사건들
75년 장준하 선생 등산중 추락사 두개골에 구멍…숱한 의문점 제기
화성서 4년7개월간 부녀자 10명 살해 205만명 동원 불구 공소시효 만료
91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1년만에 유골 발견…영원한 미제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The truth will come out anyway)는 영어 속담이 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는 “진리를 영원히 감옥에 가둬둘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적 의문사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제사건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미제사건과 의문사 등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져야 할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개관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1970년대 유신체제에 강렬히 저항해 ‘재야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소재 약사봉에서 등산 도중 실족ㆍ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추락사로 보기에는 두개골 함몰을 제외하곤 사체가 너무 깨끗해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1988년 정부는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재조사해 실족에 따른 추락사임을 다시 확인했고,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활동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 2기는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9월 37년 만에 유골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에서 지름 5~6㎝ 크기의 구멍이 유족들에 의해 확인되면서 인위적 상처로 사망했다는 타살의혹이 일었다. 장준하 기념사업회와 유족은 청와대에 사건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공식 요구하며, 범국민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민관합동재조사 특별기구를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 권력자였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1963년 7월부터 중정부장으로 재직했던 김형욱은 1969년 전격 경질돼 19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1977년 미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표적이 됐다. 1979년 10월 7일 오후 7시 김형욱은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당시 54세) 실종됐다. 국가권력 개입설이 제기됐으며,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2005년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조사 결과에서 “김형욱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중앙정보부 요원 등에 의해 파리 외곽에서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체 유기 장소에 대해 관련자들이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아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경기도 화성연쇄살인=4년7개월에 걸쳐 부녀자 10명이 잔인하게 살해됐다.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 발생했다. 유일하게 해결된 8번째 사건의 경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증거로 채택돼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까지 연인원 205만여명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1991년 3월 26일 대구시 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성서초등학생들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당시 정부는 경찰과 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현장 주변을 수색하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을 배포했지만, 뚜렷한 성과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했다. 사건 발생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그러나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태원살인사건=지난 1997년 4월 8일 밤 10시께 서울 홍익대 휴학생 조중필(당시 22세) 씨가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목과 가슴 등을 흉기로 9차례 찔려 살해됐다. 유력한 용의자들이 서로 범행 사실을 떠넘기면서 검찰 수사가 난항을 겪었고 결국 검찰은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해 그를 살인혐의로, 혼혈 미국인 아더 패터슨은 흉기를 버린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해 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패터슨은 출국정지 조치가 연장되지 않은 틈을 노려 미국으로 도피했다. 에드워드 리는 2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1999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2009년 9월 영화 ‘이태원살인사건’이 개봉한 후 사회적으로 진범을 잡으라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검찰은 재수사를 결정, 지난 2010년 11월 재수사 끝에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려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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