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이 ‘방향타’였다면 박원상은 ‘엔진’이었다. 영화 ‘남영동 1985’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죠.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선택에 대한 감당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감독님께 ‘저는 체력만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온 몸을 받아 안았던 주인공. 1980년대 정권이 휘두른 폭력과 고문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야 했던 육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켜내려했던 강인한 영혼을 연기하기 위해서 박원상(42)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지영 감독은 “원상아, 우린 영화하는 사람 아니냐, 너는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라며 마음 속의 부채와 어깨 위의 짐을 덜어줬다. 선배 이경영은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마라, 네가 언제 이런 역할 맡겠느냐”고 재촉했다. 결국 박원상은 몸 하나로 버티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학 재학 시절 최루탄을 뒤로 하고 극장 무대에 올랐던 마음의 빚은 한 켠으로 미뤄뒀다.
“영화촬영을 끝내고 고 김근태 상임고문의 묘역에 참배하러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는데, 제일 입구에서 박래전 선배(19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과 군사독재 종식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숭실대 학생, 당시 인문대학생회장)의 비석이 보이더군요. 1988년 당시 저는 신입생으로 학내에선 최루탄이 펑펑 터지는데도 그것을 뒤로 하고 연극반 공연 준비를 위해 극장으로 갔죠. 그 때 공연이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였을 겁니다. 그런데 총학생회에서 전갈이 와서 박래전 선배가 분신했다고 하더군요. 현실 참여를 외면했던 연극반 선배들과 엄혹한 시대 분위기, 그 속에서 답답해하고 갈등했던 저. 완전히 잊고 있었던 풍경들이 떠올랐지요.”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정권으로부터 당한 폭력과 고문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박원상은 극중 ‘김종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극중 형사들에 의해 발가벗겨진채 욕조에 거꾸로 쳐박혀 물고문을 당하거나, 물주전자로 퍼붓는 고춧가루물을 들이켜는 장면은 트릭이나 대역 없이 ‘실연’을 했다. 이 신은 박원상이 버티다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됐을 때 스스로 신호를 보내면 ‘컷’을 하는 방식으로 촬영됐다. 보는 사람마저도 힘든 장면들이 스크린에 이어진다.
“사실 육체적인 것 보다는 내가 이걸 해도 되나라는 자격지심때문에 더 부담이 컸죠. 샌님같던 친구들이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고, 학교와 거리는 최루탄 냄새로 가득찬 현실에서도 연극만 하면서 대학 4년을 보낸 내가 이 영화를 해도 되나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어요.”
험난한 촬영을 받아낸 체력만큼이나 박원상의 탄탄한 연기력은 한국 영화계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박원상은 대학 졸업 후 6년여간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며 연기의 근육을 다졌다.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해 40편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 ‘와이키키브라더스’에서 황정민, 이얼 등과 함께 주인공을 맡아 주목을 받은 뒤 주ㆍ조연으로 활약하며 감독과 관객의 신뢰를 받는 ‘연기파’로 입지를 굳혔다. 정지영 감독과는 전작 ‘부러진 화살’로 인연을 맺어 두 편째 이어가게 됐다. ‘부러진 화살’에선 학교에서 해임당한 교수를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는 변호사로 출연했다. 안성기와 일종의 버디무비로서 호흡을 맞췄다. 대학 시절 봤던 ‘하얀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디렉터스 체어에 앉아있고, 촬영장인 법정엔 당시의 주인공들인 안성기와 이경영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 관객으로 만났던 대단한 작품의 감독과 배우들이 어느새 선배이고 동료로서 곁에 있다니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박원상은 슬하의 두 형제 중 중학생인 맏아들과 함께 ‘남영동 1985’를 관람할 계획이다. 아내는 ‘동네 아줌마’ 들과 함께 단체 관람하기로 했다.
“비극적인 과거사의 기억을 누구나 짊어지고 살아갈 수는 없을 거에요. 단지 잊을만하면 찔러주는 사람이 있어야죠. 누군가는 잊지 말자고 해야지요. 기억이 잊혀지고 역사가 단절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시험을 봐도 오답노트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잖아요?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박원상은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3인조 보컬그룹(‘블루스’)을 만들어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은상을 거머쥐었던 경력이 있다. 당시 우황청심환을 먹고도 부들부들떨어 결국은 화음을 깼다. 그리고 그는 20년 후 그는 한국영화 문제작의 가장 문제적인 주인공이 됐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옥택연 25억에 낙찰받은 그집, 75억이 됐다…류현진 부부도 사는 강남 고급빌라 [초고가 주택 그들이 사는 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4/news-p.v1.20260904.6851255acf834221b5039de0a2498eb5_T1.jpg?type=h&h=240)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