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억압된 자유 분노 표출땐 ‘악령’으로 내몰려

인간의 욕망과 종교와의 갈등 ‘신의 소녀들’서 심도 깊게 다뤄

지난 2005년 6월, 루마니아의 한 그리스정교회 수도원에서 23세의 한 수녀가 죽은 채 발견됐다. 십자가에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진 상태였으며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사건은 유럽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수녀는 신부와 동료 수녀들에 의해 “악령을 쫓는다”며 퇴마의식을 받던 중 사망했다. 퇴마 의식을 주도한 신부는 살인죄로 14년 감옥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가담한 수녀 4명은 5~8년형에 처해졌다. 그리스정교회는 이 사건을 “끔찍한 사건”이라며 사제들에 대한 정신감정을 포함한 개혁을 약속했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미 지난 1999년 “현대 정신의학을 중요하게 고려해 퇴마의식 실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는 ‘엑소시즘’(exorcism)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악령을 쫓는 퇴마 의식이 바로 ‘엑소시즘’이다. 가톨릭을 비롯해 많은 종교에서 ‘엑소시즘’이 오랫동안 공식, 비공식적으로 행해졌으나 최근엔 ‘의학적 질병’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종교적 예식은 극히 제한되는 추세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퇴마의식이 암암리에 내려오고 있고 종종 비극적인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영화에선 ‘엑소시즘’이 많은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 7년 전 루마니아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도 소설로 옮겨졌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6일 개봉한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신의 소녀들’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루마니아의 고아원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성의 연인으로 자랐으나 서로 헤어져 독일과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

독일로 돈을 벌러 떠났던 알리나는 친구와 함께 살고자 수녀가 된 보이치타를 데리러 수도원을 방문한다. 하지만 보이치타는 이미 신에게 운명을 약속한 처지. 자신의 사랑과 우정이 외면받자 알리나는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고, 수도원의 신부와 수녀들은 알리나에게 ‘퇴마의식’을 벌이게 된다. 결국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묶여 있던 알리나는 탈진으로 죽는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과 원작 소설의 얼개를 가져오되 집단과 개인의 문제, 자유의지와 종교적 계율의 충돌,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윤리의 갈등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로 확장했다.

과연 알리나는 악령에 씌었던 것일까? 영화는 ‘성’(聖)과 ‘속’(俗)의 세계에서 모두 행복할 수 없었던 한 여성의 비극적 삶을 담고 있다. 여기서 악령은 신의 이름으로 억압된 자유의지이자, 종교적 계율과 충돌하는 세속의 욕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은 불행이 ‘악령’의 씨앗이다.

엑소시즘은 많은 공포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엑소시스트’이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이 작품은 12세의 순수한 소녀가 악령에 휩싸여 갖은 기이하고 충격적인 행동을 하고 끔찍한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을 그려 전세계 영화팬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영화를 보면 여전히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가 하면 최근 개봉한 우리 영화 ‘점쟁이들’은 인간의 탐욕을 ‘악령’으로 그린다.

악령은 뇌의 오작동으로 인한 정신질병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 부린 악행일까, 부조리한 사회가 낳은 불행한 삶의 상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