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정진영 기자]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 회의를 느꼈을 때 벌이는 행동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기자의 행동은 조금 극단적이었다. 자발적 백수가 되는 길을 감행하며, 회사에 사직의 의사를 밝힌 것이다. 언젠가부터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기사만 써온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괴로워졌다. 7년 동안 기자로 일해 왔지만, 그 자리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과연 기자에게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 모습이 괴로워 보였는지 기자의 부인도 퇴사를 막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퇴사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함께 일해 온 동료 기자들이 연속으로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며 재고를 권유하니 단단했던 결심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사 결정을 내렸던 마음을 모두 거둬들이긴 쉽지 않았다. 조금 더 고민하기 위해 기자는 아직 쓰지 못한 월차를 이용해 긴 휴가를 내고 스스로를 괴롭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7년 전 여름, 나름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던 기자는 3박 4일 동안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까지 걸으며 길 위에서 생각을 정리했었다. 꽤 고된 일이었지만, 생각을 냉정하게 정리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됐던 경험이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자전거 국토종주가 떠올랐다. 아라서해갑문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연결하는 633㎞ 코스. 길 위에서 스스로를 못 살게 굴면 무언가 좋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몸이 생각보다 빠른 기자의 무모한 자전거 국토종주가 시작됐다.
지난 11월 10일 오전, 기자는 한 대형마트의 자전거 매장에 들러 자전거를 구입했다. 기자가 구입한 자전거는 미니벨로였다. 기자가 미니벨로를 구입한 이유는 단순했다. 접이식인데다 가벼워서 이동이 편하고, 길 위에서 속도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매장에 전시된 미니벨로 중 가장 가벼운 물건을 구입했다. 동시에 예비용 튜브와 펑크패치, 공구세트, 펌프 등을 구입하며 기자는 자신의 철저한 준비성에 대해 감탄했다. 이 선택이 앞으로 기자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가져다줄지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기자가 간과한 부분은 또 있었다. 기자가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은 약 5년 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기자의 몸무게는 7년 전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어갔을 때보다 약 20㎏ 가까이 불어난 상황이었다. 그저 7년 전 경험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그날 오후 기자는 바로 자전거 국토종주에 나섰다. 그야말로 대책 없는 출발이었다.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는 인천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시작된다. 아라뱃길 서해갑문은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에서 멀지 않다. 기자는 급하게 집에서 챙긴 짐과 자전거를 공항철도로 옮겼다. 청라국제도시역에 도착한 기자는 약 2㎞가량 페달을 밟아 아라뱃길 서해갑문에 도착했다. 길에 피어있는 꽃이라곤 감국, 산국 등이 전부였다. 올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자전거 국토종주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은 인증수첩이다. 코스 곳곳에 설치된 인증센터에서 수첩에 인증도장을 모두 찍으면 국토종주 인증메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종주 시작 전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아라타워에서 인증수첩을 구입했다. 수첩의 가격은 4500원이다. 수첩을 구입하면 지도가 딸려온다. 식사 및 숙박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도이니 반드시 챙겨야 한다.
수첩을 구입한 뒤 코스의 시작점인 정서진으로 나오면 첫 번째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가 나온다. 이 곳에서 수첩에 첫 번째 인증도장을 찍은 뒤, 국토종주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날의 목표는 인천과 김포를 거쳐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시간을 살펴보니 오후 3시 30분이었다.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 다음 인증센터는 ‘아라 한강갑문 인증센터’로 20㎞ 정도 페달을 밟아야 닿는다. 길에는 국토종주 코스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곳곳에 돼 있어 코스 이탈을 방지해준다.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과 ‘아라 한강갑문 인증센터’ 사이의 코스는 ‘아라자전거길’로 불린다. 이 구간은 경사가 없고 노면 상태도 좋아 이동이 편리하다. 또한 코스 곳곳에 편의점이 다수 설치돼 있어 물과 간식 보급이 쉬운 편이다.
그러나 늦은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에 ‘아라 한강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국토종주를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야간 라이딩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전조등과 후미등 장착은 필수이다. 늦가을이다보니 찬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로 준비해 온 바람막이를 한겹 더 입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아라 한강갑문 인증센터’를 지나면 ‘한강종주자전거길’ 서울 구간이 나온다. 서울 구간의 매력은 야경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 눈에 담은 풍경들이 많았다. 서울 구간의 첫 번째 인증센터는 ‘여의도’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 인증센터 내부의 조명이 켜지지 않았다. ‘여의도’ 다음 인증센터인 ‘광나루 자전거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앞으로 방문하게 될 인증센터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봄이나 여름에는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화려한 야경은 서울 구간이 마지막이었다. 서울 구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국토종주 코스의 야경은 매우 단조로워진다. 이 날의 목표는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도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문제는 숙소였다. 간신히 서울 구간을 벗어난 기자는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숙소를 찾는 데에만 1시간 이상 소모했다. 처음 길을 나섰을 때, 기자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잠시 길을 벗어나면 잠잘 곳이 어디에든 보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인증센터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숙소를 잡을 때에는 인증수첩을 구입했을 때 함께 딸려온 지도를 참고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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