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샤오미
최근 중국발 딥시크(Deepseek) 충격파가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술굴기의 전조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얼마전 중국 북경 근교에 위치한 샤오미 전기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싸구려 핸드폰 만드는 회사가 설마 하고 들어갔다가 충격받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아마존 웨어하우스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듯 초현대적 시설의 공장 바닥에는 자재를 옮기는 자동 로봇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사람들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자동화율이 91퍼센트로 테슬라보다도 높다고 했다.
더욱 더 놀랐던 것은 샤오미가 팬데믹 와중인 2021년 전기차 진출을 선언한 이후 첫 차를 출시하는데 불과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애플카 포기 선언이 나온지 한달여만에 출시되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10여년동안 15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실패한 애플카와 3년만에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전기차 개발에 성공한 샤오미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딥시크로 닥칠 중국발 인공지능(AI) 충격의 예고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첫째는, 14억 인구가 갖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로 뭐든 싸고 빠르게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중국만의 제조 경쟁력이다. 불과 한 세대 남짓한 기간에 미국, 독일, 일본, 한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제조업과 풀 스케일의 공급망을 구축했다.
둘째, 과학기술 엔지니어의 인해전술이다. 중국인구에서 상위 4퍼센트만 영재들이 배출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5000만 인구보다 많은 셈이다. 매년 220만명의 이공계 졸업생이 배출되는데 우리의 10배이고, 미국의 3배다.
셋째, 정부의 선견지명과 용의주도한 산업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서구가 앞선 내연기관 자동차 추격에 한계를 느낀 중국 정부는 아예 패라다임 자체를 전기차로 바꿔 새로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을 세운다. 독일 아우디에서 10여년 일했던 엔지니어를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하고, 10개의 성에 1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는 등 정부가 전폭적으로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창출하고,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한다. 이에 힘입어 중국의 전기차 산업과 기술은 20여년만에 세계 최고가 되었다.
Deepseek를 키운 토양
“제약은 혁신을 낳는 법이다 (Constraints inspire innovation)”
샤오미 창업자는 2021년초 미국 상무부 제재대상에 포함되어 기업의 생사 여부를 고민하면서 전기차 사업 진출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딥시크도 미국의 수출통제로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 확보에 제약이 있다 보니 역설적으로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그리고 훨씬 비용효과적인 혁신적, 창조적 AI 모델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북경의 중관촌에 가면 IBM PC 부문을 인수하며 세계 최대 PC 업체가 된 레노보 본사의 고층 건물이 있다. 그런데 그 앞 잔디에는 옛날 가난한 시골에서 볼 법한 초가집처럼 허물어져가는 단칸짜리 조그만 집이 있다. 창업 초기의 사옥인데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을 잊지 말자는 창업자의 뜻으로 허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 BYD, 틱톡, 테무, 딥시크 등 중국기업들의 치열한 경쟁과 기업가 정신의 저변에는 아직 사그러들 줄 모르는 ‘헝그리 정신’이 있다. 우리의 대기업들은 이미 창업 3세대, 4세대로 넘어가며 안정화된 데 반해,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기업들은 이미 공룡같은 몸집을 가졌지만 아직 창업 1세대의 도전 정신을 품고 있는 듯 하다. 불굴의 의지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아직도 ‘헝그리’한 에너지가 중국기업들의 원동력이다.
얼마전 하버드 대학원에서 한학기 끝에 자퇴하고 중국으로 돌아간 학생이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중국은 무지막지한 경쟁 속에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하버드에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중국 14억의 시장에서 대박이 나는 것은 5000만 시장에서 대박이 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잘 데와 먹을 것만 주면 눈을 반짝이는 젋고 배고픈 인재들이 몰려들어 중국판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996 (9시 출근, 9시 퇴근, 6일 근무)을 기본으로 전력 질주하고 있다.
AI 경쟁: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해외에서 보는 한국 AI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실리콘 밸리 벤쳐캐피털의 AI 투자가와 스타트업 CEO를 만난 적이 있다. 국내에서 흔히들 얘기하는 한국의 AI 3대 강국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은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을 후보군으로 꼽았다. 캐나다는 토론토대학 등에 AI분야의 뛰어난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몰려 있고, 영국은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의 학문적 강점에다 이세돌과 AI바둑으로 AI 원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딥마인드라는 AI기업 등의 에코시스템이 강점이라 했다. 프랑스는 미스트랄 AI라는 자체모델이 있고 마크롱 정부가 규제완화, 엔지니어 양성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 떠오르고 있다 했다. 이스라엘은 첨단 국방과 정보 분야 스타트업들이 발달해 있어 주목한다고 했다. 최근 일본은 AI분야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AI 강국으로서 주목을 받기 위한 요소들, 즉, 세계적 수준의 논문, 유망 스타트업 및 에코시스템, 정부의 전폭적 지원 (규제완화, 펀딩) 등 어느 분야에서도 현재의 한국은 해외에서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쉽게 단순화해서 한 국가의 AI 경쟁력은 두가지 측면, 즉, AI 기술을 개발해서 관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과 AI 기술을 경제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하고 활용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결정된다 하겠다.
한국은 첫번째 측면, 특히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AI라는 거대한 전체 건축물의 일부 구조물일 뿐이다. AI분야 과학논문 발표 건수를 보면, 중국이 단연 1위, 미국, 인도, 영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이 상위권이고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네이쳐(Nature)지의 과학 연구 인덱스 순위를 보면 하버드가 1위, MIT, 스탠포드가 10위, 11위이지만, 2위에서 9위까지가 모두 중국의 대학들이다. 서울대가 54위에, 카이스트가 76위에 겨우 올라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국가별 AI 경쟁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글로벌 지표들이 발표되어 있다.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회사, 세계 100대 디지털 회사, 세계 100대 모바일 앱, 세계 500대 AI 회사 등 어떤 지표를 봐도 한국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군데서만 보일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AI 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활용되는 측면에서도 한국은 느린 듯 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어떤 업종이건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사람이랑 통화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과거 글로벌화시대에는 인도나 필리핀 등 콜센터로 연결되었는데, 이제는 AI 를 적용 자동화를 추진중이라 무척 불편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기업들이 AI를 도입해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2-3년 후에는 사람인지 AI인지 구분이 안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은 인건비가 높다보니 AI를 통해 효율화하려는 동기가 큰 반면, 한국 기업들은 이런 시도를 하려고 해도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보니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우버이건, 자율주행차이건, AI를 적용한 신기술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번번이 기득권의 반대나 새로운 규제에 막히기 일쑤다.
지금 놓치면 낙오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
AI 3대강국이 가까이 보인다는 장밋빛 희망보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AI 경쟁에서 낙오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발 각종 관세보다도 AI 경쟁 낙오가 한국에는 중장기적으로 더욱 큰 위기가 될 것이다. 정부 주도로 AI 펀드 몇개 조성 발표하는 즉흥적 해법이 아닌 10여년을 시계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 문화, 교육까지도 고칠 부분은 고치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우선, 갈라파고스적 한국 특유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만큼 돌파기술, 천문학적 민간자금도 없고, 중국처럼 규모의 경제, 빅데이터, AI 인해전술을 할 수 없다면, 한국은 아이디어밖에 없는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신축적이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AI 강국들간 끼어있는 우리로서는 생존 차원의 전략이다.
우리가 트럼프 경제정책 중 배워야 할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규제완화이다. 1기때 새로운 규제 하나 만들때마다 두개를 철폐하도록 하며, 특히 팬데믹 와중에는 “오퍼레이션스 와프 스피드(Operations Warp Speed)”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통 십여년이 걸리는 백신 승인절차를 1년여로 대폭 완화해 인류에 혁신적인 백신의 혜택을 준바 있다.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 유치 전략은 20여년전부터 나왔지만, 아직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로부터 어떤 지도앱을 사용해야 하냐, 한국 전화번호가 없으니 한국앱을 사용할 수 없다는 불평이 들린다. 한국 정부와 대사관의 많은 문서, 지원양식 등도 아래아 한글로 되어 있으니 열어볼 수가 없다고들 한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과거 아래아한글로 만들어진 문서가 표준 데이터화가 안 되는 것도 문제다.
둘째, AI 분야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및 혁신 경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인수합병(M&A)을 통해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AI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산업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져, 그 어떤 일류 기업도 내부 자원을 가지고만 AI 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가기는 어렵다.
한중일 삼국 기업들의 해외진출 추이를 살펴 보면, 일본이나 우리보다 기업 역사가 짧은 중국은 해외 진출시 그린필드뿐 아니라 인수합병을 적극 활용한다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영국 ARM 인수,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 중국 질리 자동차의 스웨덴 볼보, 영국 로터스 인수 등 일본, 중국 기업들의 해외 M&A를 통한 브랜드, 기술, 시장 확보 사례는 많은 데 반해, 한국 기업들은 주로 100퍼센트 그린필드 투자를 통해 해외진출하는 것이 주종이다. 해외에서 만난 한 반도체 전문가는 한국반도체 업체가 과거 핵심적 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들과 몇건 진행되던 해외 인수합병 기회를 잡았더라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수도 있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주요 한국 기업들에 투자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셋째, AI로 미래의 유능한 인재상이 바뀌고 있는 와중에 우리의 교육 제도도 대폭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저출산 고령화로 쪼그라드는 인재풀에서 우수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보다는 공대나 비즈니스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후자는 무에서 유를 만들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왜 한국 자본주의에는 제조업으로 일군 재벌은 있어도 워렌 버펫이나 손정의 같은 기업가, 투자가 모델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보스톤에서 만난 한 MIT 교수는 중국과는 20여개 대학들과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왔는데 한국 대학들과는 거의 없다며 한국이 이제는 글로벌화보다는 국내지향적(inward)으로 바뀐 거 아니냐며 내게 심각하게 물었다.
창의적, 통섭적, 학제적인 교육이 필요한 AI시대에 식민지 시절에 비롯되었다고 하는 이과 문과 제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전공을 정하지 않는다. 1학년때 언어학, 경제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을 자유롭게 수강하고 2학년때부터 전공을 정하는 데, 그것도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언어학과 컴퓨터 공학, 경제학과 물리학 등을 함께 전공할 수 있도록 신축적으로 되어 있다. 한국처럼 자신의 적성도 잘 모르는 고등학교 시절 문과생, 이과생으로 한번 결정한 것이 대학은 물론 평생 칸막이로 작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지 우리 사회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릴적에 부모 말에 토를 달면 버릇 없다고 꾸중을 들었다. 유대인들은 부모 말에 토를 달지 않으면 혼이 난다고 한다. 부모 말에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사회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AI 시대에는 우리도 자식들이 부모말에 토를 달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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