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임대주택 20%가 근본 해법
‘‘소유’ 목적 분양 중심에서 ‘거주’ 목적 장기임대 균형으로
‘‘저소득층 복지’ 프레임에서 ‘중산층 포용 보편적 주거’로
공익임대주택 20%, 투기 심리를 잠재울 항구적 방파제
국민소득이 크게 늘고 복지제도가 확충됐지만, 수도권 초밀집이 가속화되면서 주거 문제는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가장 심각한 민생 현안이 되었다. 특히 AI(인공지능) 전환으로 산업과 일자리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안정된 주거 기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택은 단순한 부동산 문제를 넘어 삶의 든든한 기반으로서 결혼과 출산, 교육과 일자리, 노후와 자산 형성은 물론 국민 통합과 국가경쟁력까지 국민의 삶과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주거가 불안하면 개인의 행복한 삶은 물론, 건강한 사회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린다.
‘주택시장 구조개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과 전·월세 불안이 계속되면서 무주택자와 청년들의 상실감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3일 부동산 세제개편안 발표에 이어 8월 13일에는 ‘주택 신속공급 방안’을 내놓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세제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공급대책 역시 가용 수단을 폭넓게 동원했지만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는 속도와 실효성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랜 기간 부동산 정책과 법률을 만들고 집행해 본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정부대책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어떤 시장 변동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주택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장기 비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격 상승과 자산 형성에 대한 기대, 임대거주의 불안정성,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 국민이 주택을 무리해서라도 소유하려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면 집값과 전·월세 불안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집값 불안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시장구조
주택시장은 일반 상품시장과 크게 다르다. 탄력적인 수요·공급과 합리적인 가격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적으로 불완전한 시장이다.
우선 제한된 가용토지와 시차로 공급이 매우 비탄력적이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초밀집 구조가 수급 불균형을 만성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아파트는 택지 확보부터 인허가·건설·입주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며, 일반 공산품처럼 미래 수요에 대비해 재고를 쌓아둘 수도 없다. 수요가 급증해도 즉각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이 ‘시간의 간극’이 집값 급등과 투기의 토양이 된다.
수요의 특성 또한 이례적이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야 하지만 주택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를수록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불안심리가 작동하면서 가수요와 투기수요까지 가세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규제 강화와 부양책을 반복해 온 역대 정부의 ‘냉·온탕 정책’도 “결국 집값은 오른다. 부동산이 최고의 재테크다”라는 잘못된 부동산 불패 기대를 심어주었다.
따라서 집값이 오를 때마다 대출과 세금으로 규제하고 공급대책을 발표하는 단기적 대응만으로는 반복되는 주거불안을 근본적으로 잠재울 수 없다. 국민에게 “집을 사지 않아도 집 걱정 없이 평생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장기 주거안정체계가 필요하다. ‘소유 목적의 주택’과 ‘거주 목적의 임대주택’이 균형을 이루도록 공급 구조 자체를 바꿔야 국민의 기대와 선택도 바뀌고 가수요와 투기수요도 줄어든다.
‘소유주택’과 ‘거주주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주택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이 살고 싶은 곳에서(Adequacy),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Affordability), 평생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Stability) 주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정책이 오랫동안 분양, 즉 ‘소유’ 중심으로 설계돼 온 결과 주거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거주 목적의 장기임대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필자는 건설교통부장관 재임시절이던 2007년, 폭등하던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1.11대책(분양가상한제와 원가공개제)과 1.31대책(260만호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 투기수요 억제정책에 분양시장 제도개혁과 2017년까지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260만호 추가 공급해 전체주택의 20%(약 340만호)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조적 처방이 더해지자 시장은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장기임대주택 확대 계획이 일관되게 추진됐더라면 오늘날 국민의 주거 선택지는 훨씬 넓어지고 주택시장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 부족으로 2024년 말 공공임대주택은 약 197만호로 전체주택의 약 8.6%에 불과한 실정이다. 2024년 말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4%에 이르지만 자가 거주율은 44.1%이고 55.9%가 임차가구다. 문제는 이들 임차가구 중 공공임대주택의 혜택을 받는 비율은 20% 미만이고, 약 80%는 비제도권 민간 전·월세에 의존하면서 잦은 계약 갱신과 임대료 상승, 보증금 미반환과 전세사기 등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여기에 장기간 집값 상승을 목도하면서 ‘집을 사지 않으면 자산 형성에서 뒤처진다’는 구조적 압박까지 받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국민은 믿기 어렵다. 거주 안정성과 자산 형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주택 소유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할 사람은 소유하고, 임차해 살고 싶은 사람은 소유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에게 “집을 사지 않아도 집 걱정 없이 평생 살 수 있다”는 실질적인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유 목적의 분양주택’과 ‘거주 목적의 장기임대주택’이 균형을 이루는 시장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무조건 물량만 늘리는 공급정책을 넘어 순수 거주목적의 장기 임대주택 공급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집값안정과 주거 복지라는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다.
‘공익임대주택 20%’를 국가 목표로
항구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전체 주택의 20%를 ‘공익임대주택’(가칭)으로 확보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익임대주택은 기존 저소득층 중심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발전시킨 개념이다. 즉, ▲공급주체를 LH 등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과 비영리법인까지 확대 ▲30년 이상 또는 본인이 원하는 기간까지 안정적 장기거주 보장 ▲합리적인 임대료 ▲분양주택에 뒤지지 않는 품질과 주거환경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폭넓게 이용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무엇보다 ‘임대주택은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낙인을 지워야 한다. 임대주택도 좋은 입지에 좋은 품질로 공급돼야 임대가 특정 계층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국민 누구나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는다. 그때 비로소 “반드시 내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도 완화되고 주택시장의 수요구조 역시 정상화될 수 있다.
왜 20%인가? 국내외 연구와 주택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하면 장기임대주택이 주택시장의 한 축으로 시장 안정에 지렛대 역할을 하려면 20% 수준의 재고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오스트리아·덴마크 등은 사회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20%를 넘으며 주택시장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주택(약 2,300만호)의 20%는 약 460만 호다. 현재 공공임대주택 약 200만호를 리모델링해 공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더라도 신규로 260만호를 추가 공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기간에 확보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익임대주택 20%’라는 명확한 국가적 목표를 세우고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로드맵 하에 공공과 민간이 합심하여 향후 10년에 걸쳐 주택시장 구조를 바꾸자는 의미다.
핵심은 공급 방식의 다변화다. 현재와 같이 LH 등 공공부문에만 의존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민간기업, 리츠, 연기금 등 장기자금이 공익임대시장에 자발적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공익임대사업에 세제·금융·택지·도시계획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대신 장기임대, 임대료 안정, 주거품질 유지 등 분명한 공적 의무를 부과하면 된다. 기업에는 적정 수익을 보장하되 국민에게는 안정된 주거를 제공하는 ‘적정 수익성과 확실한 공익성’이 결합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관건은 수도권의 공익임대 건설용지 확보다. 신규 택지개발이나 재개발·재건축 추진 시 주택 공급량의 일정 비율을 공익임대주택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건폐율 및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연계하면 사업성을 담보하면서도 도심 역세권과 직주근접 지역에도 양질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주택정책의 대전환,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결국 집값과 전월세는 ‘규제’로 잡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안정시키는 것이다. 공익임대주택 20%는 단순한 공급 목표가 아니다. 국민에게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원하는 곳에서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주거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많은 주택을 공급해도 ‘집을 소유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집값 상승과 전·월세 불안은 반복될 것이다. 질 좋고 안정적인 장기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면 주택은 ‘반드시 사야 하는 자산’에서 필요와 형편에 따라 소유하거나 임차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주거수단’으로 바뀐다. 주거문화가 ‘소유 중심’에서 ‘소유와 거주가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전환되면 투기심리도 자연스럽게 꺾여 매매시장과 전·월세시장이 동반 안정될 수 있다.
물론 공익임대주택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도권 주택문제의 근저에는 초밀집의 ‘수도권 일극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당장의 집값 진화를 넘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주거안정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향후 10년에 걸친 ‘공익임대주택 20% 로드맵’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 국민 누구나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좋은 집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택안심국가’를 만들자. 이것이 반복되는 주택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자, AI시대 젊은이들이 ‘집 사는 일’에 인생의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창의와 혁신 그리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열정을 쏟게 만드는 확실한 투자이다.
이용섭 전 국세청장·건설교통부장관
bonsang@heraldcorp.com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프롬프트의 신법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901.203c531a96884d4da174595cad521d59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