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많은 주부ㆍ자취생은 자린고비형 택해
-‘행복’ 우선시 하는 젊은층은 될대로돼라형 선택
-가족 내 에어컨 성향 달라 갈등…새 풍속도 뚜렷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도 에어컨 리모콘을 손에 쥔 시민들은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항상 고민에 빠진다. 에어컨을 켤수록 내야 하는 전기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누진세’ 때문이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부채와 선풍기로 버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돈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몸부터 챙기는 이들도 있다. 2016년 8월, 폭염이 낳고 있는 두 풍경이다.
▶무더위, 온몸으로 버틴다=살인적인 더위를 에어컨 바람 없이 버텨내는 이들은 가정 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주부나 생활비가 빠듯한 자취생들이 많다.
경기 과천에 사는 김모(52ㆍ여) 씨는 선풍기 4대로 한여름을 나고 있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의한 ‘요금 폭탄’을 생각하면 에어콘을 아예 사지 않는 것이 이득이란 판단에서다. 가족들이 다 같이 시원한 노래방으로 ‘피서 아닌 피서’를 떠나기도 했다. 김 씨는 “최근 불경기로 인해 중소기업 운영에 애를 먹고 있는 남편을 위해 집안 살림에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고통스럽지만 더위를 참고 지낸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29ㆍ여) 씨 역시 요즘 저녁 약속을 잡거나 시원한 카페나 주민센터에 설치된 무더위 쉼터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최대한 버티다가 집에 들어간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곧바로 씻고 잠자리에 든다. 절대적인 수면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이 씨는 “에어컨을 켜지 않다보니 열대야 때문에 밤새 여러번 깨는데 그나마 오래라도 자야 다음날 덜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 원룸으로 이사한 직장인 김모(30) 씨는 전기요금 걱정에 피서를 복도로 간다. 복도 쪽에는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마음 같아선 현관문을 열어놓고 자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내가 복도에 나가서 잠시 땀을 식히고 돌아오곤 한다”고 했다.
▶일단 지르고(?) 본다=에어컨 전원 버튼을 과감하게 누르는 쪽은 ‘순간의 행복’과 ‘건강’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다. ‘전기료 폭탄’은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직장인 배모(35ㆍ여) 씨가 대표적인 예. 배 씨는 “당연히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테지만 더위를 피해서 어디 여행 다녀오는 돈인 셈 치겠다”고 했다. 워낙 더워서 다른 소비생활에 관심이 없다 보니 안 쓰는 돈을 어느 정도 냉방에 쓰는게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더위에 유난히 약하다는 대학원생 김모(33) 씨는 “전기요금이 비싸봐야 두어달이니 (나부터) 살고보자는 심정으로 그냥 에어컨을 켜고 산다”며 “가족 모두 콘솔게임을 좋아해 원체 전기 사용량이 많다보니 조금 더 쓴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사업가 김모(54) 씨는 에어컨을 사용하되 철저히 전기 사용량을 체크하는 쪽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밖에 달려있는 전력량 계량기를 확인해 오늘 에어컨을 켤 시간을 정한다. 김 씨는 “사용한 전력량이 500㎾h를 넘는 순간 6단계로 분류돼 누진세를 내는 만큼 미리미리 사용량을 계산한다”고 했다.
▶한 가족 안에서도 티격태격=한 가족이라도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는 사람과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 나뉘다 보니 서로 다투거나 한쪽이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다.
현직 경찰로 일하고 있는 김모(40) 씨는 요즘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자녀를 쫓아다니며 에어컨을 끄기 바쁘다. 아이들은 집에만 오면 자신들 방에 설치한 벽걸이 에어컨을 끼고 산다. 김 씨는 “에어컨도 10년이 다돼 가는 구형이라 말로만 듣던 누진세 요금 폭탄을 맞게 생겼는데 아들은 ‘그래봐야 얼마 나오겠어요’라며 태연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김 씨 부부는 아이들이 잠들자마자 몰래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돌린다.
처갓집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진모(33) 씨는 “나는 더위를 심하게 타는데 처가 사람들은 아무도 더위를 안탄다”며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눈치가 보인다”며 토로했다. 그는 “내가 관리비를 다 내는게 아니고 용돈을 드리는 처지다 보니 뭐라 말할 입장이 못된다”며 “그나마 전기 요금이라도 저렴하면 강하게 어필(?)했을텐데…”라고 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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