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줄이려 긴축 예산안을 내놓은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지난 8일 의회(하원 표결)에서 불신임돼 실각했다. 지난해 12월 전임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가 불신임돼 무너진 지 9개월 만에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번 불신임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년 새 다섯 번째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바이루는 지난 7월 공휴일 2일 축소, 연금 동결, 의료 예산 감축 등을 포함해 총 440억유로(약 64조원)의 지출을 줄인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바르니에 내각이 내놓은 600억유로 긴축 패키지보다 완화한 것이지만 야당과 국민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 번 늘린 복지 지출은 여간해서는 줄일 수 없다는 재정 중독의 폐해를 프랑스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수십 년간 고질적 재정 적자가 계속되면서 2000년대 초반 국내총생산(GDP)의 60% 수준이었던 국가 부채가 현재(2025년 1분기) 113.9%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다. 금액으로 3조3454억유로(약 5461조원)에 달한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유로 사용국(유로존) 중 그리스(152.5%)와 이탈리아(137.9%) 다음으로 높다. 연간 재정 적자도 2024년 1697억유로(약 268조원)로 GDP의 5.8%에 달했다. 유로존 평균 적자율(3.1%)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 증가는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S&P는 지난해 5월 프랑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고, 무디스도 지난해 Aa2에서 Aa3로 하향했다. 이 영향으로 2022년 초 1%대였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년여 만인 현재 3.5%에 육박하고 있고,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 부도’인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까지 언급된다. 바이루가 이날 표결 전 “여러분(의원들)은 정부를 전복시킬 힘은 있지만, 냉혹한 현실에서 도망칠 능력은 없다”고 호소한 배경이다.

바이루의 호소에도 야권은 “부자와 대기업 증세 없이 서민만 희생시키는 방안”(좌파), “전기 요금 인상과 의료비 부담 확대로 인해 서민과 고령층의 생활고 심화”(극우)라고 맞섰다. 온건 좌파와 우파도 공휴일 축소와 연금 동결이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정치적 판단에 등을 돌렸다. 눈앞 표 계산이 먼저인 정치권에 고통 분담 같은 불편한 정책은 뒷전인 현실은 프랑스나 우리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주요 선진국보다 부채 비율이 낮다고 여유를 부리고, 재정에 기대기 시작하면 외환위기 같은 파국이 또 올 수 있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