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이 이렇게 찢어졌구나. 어디서 왔니?” 3년 전, 이란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현지 전통시장인 바자르(Bazar)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짐이 도착하기 전이라 급하게 사야할 물건이 몇 가지 있었다.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상점 주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쉴 새 없이 묻는다. 어디에서 왔는지, 이란에서 뭐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등등. 압권은 두 손으로 눈을 찢으며 외모를 흉내 내는 동작이었는데, 주인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난감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생각하면 분명 인종 차별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정색하고 따질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상대는 분명 차별이나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고 하지만, 수용하는 사람은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 이 경우에는 수용자의 입장을 우선시해서 상황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우리의 일반적 상식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란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갈 무렵, 묵혀두었던 고민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심심찮게 ‘칭챙총’이라고 말하고 지나가는 이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이다. ‘칭챙총’은 중국어를 비롯한 동양 언어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대단히 직설적인 표현 아니던가. 이방인의 서러움으로 분을 삭이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발화자의 의도가 늘 석연찮았다. 적대감을 표출하려 한다기보다는 마치 외국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던지는 한마디처럼 느껴졌다.

이란에 처음 출장 온 사람들은 대개 이란인들의 환대에 매우 놀란다. 여행서적 ‘론리플래닛’ 이란편에는 이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서구 중심의 미디어에서 보통 이란은 위험하게 묘사되지만, 이란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기대 이상으로 친절을 베푼다. 특히 지방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집으로 초대해 음식과 차를 대접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주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이란 가정의 특성상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직업, 결혼 여부, 자녀 수 등 개인사를 묻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1979년 이슬람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국제 사회의 지속된 경제제재를 겪으면서 이란은 오랜 시간 고립되었다. 90년대는 바야흐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지만 이란은 이 물결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 결과,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표준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직까지도 이란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제 핵협상 타결과 제재 해제를 계기로 세계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려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차이와 다름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리 잡을 수 있다. 경제 회복을 활발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국제적 감각과 의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면 이란은 앞으로 한층 매력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테헤란 거리를 걸을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칭챙총’과 같은 초보적 수준의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지구촌을 함께 수놓고 있는 외국인 동료에 대한 연대감을 이란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