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덮친 동해 어장… 어획량 급감·수온 최고 기록
생태계 재편 가속, 어민 생존권 ‘붕괴 경고등’
[헤럴드경제(대구·경북)=김성권 기자] 절기상 입동(立冬)이던 지난 7일, 울릉군 저동2리 어판장 마당덕장에는 말라가는 오징어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오랜만에 오징어를 본 주민들은 반가움에 발길을 멈췄지만, “냉동 오징어래”라는 말이 퍼지자 금세 웃음이 사라졌다.
저동항 선적 A호(29t)는 독도 인근 먼바다에서 열흘을 버텨 어렵게 오징어를 잡아 왔지만, 조업 경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 선주 B씨는 “바다에 나가야 할 배가 항구에 묶여 있는 게 더 괴롭다”며 “그 많던 오징어가 다 어디로 갔는지, 살아갈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전국 오징어 어획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밤마다 ‘어화(漁火)’로 반짝이던 울릉도의 바다는 이제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200척이 넘는 조업선이 불야성을 이루던 옛 풍경은 사라지고, 바닷가의 오징어 건조대만이 그 시절의 명성을 기억하듯 덩그러니 서 있다. 오징어가 ‘금징어’로 불리며 어민들은 조업을 포기하거나 생계를 찾아 육지로 떠나는 처지에 놓였다.
울릉도의 비극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1990년대 연간 10만 t 이상을 웃돌던 국내 오징어 생산량은 2017년 이후 급락해 최근에는 5~6만 t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생산량 감소는 곧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올해 3월 기준 연근해 신선 냉장 오징어의 평균 산지가격은 ㎏당 9,511원으로, 전년 대비 143.4% 급등했다. 오징어는 더 이상 ‘서민 생선’이 아닌 ‘귀한 생선’이 됐다.
문제는 단순한 어획 부진이 아니다. 해양 온난화로 바다의 ‘기초 생산력’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도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0.65℃ 상승한 수치다.
수온이 오르면서 오징어를 비롯한 한류성 어종이 차가운 물을 찾아 북상하고, 울릉도 근해에서는 더 이상 어군이 형성되지 않는다. 동해 연안은 표층과 저층의 온도 차가 커져 물질 순환이 막히고, 산소와 영양염 공급도 줄고 있다.
40여 년간 바다를 지켜온 울릉읍 저동의 정석균(63) 씨는 “이젠 물속이 달라졌다. 고기뿐 아니라 작은 해초나 멸치 떼도 안 보인다. 바다 밑바닥부터 변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도동항의 한 어민도 “예전엔 먼산의 단풍과 불빛만 봐도 오징어철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기름값만 버리고 돌아오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오징어 어획 부진을 겪는 울릉도 어민들에게 선박당 최대 2,000만 원의 경영안정자금을 긴급 지원했다.
그러나 김영복 울릉군수협장은 “단기 지원으로는 어민 생계 안정에 한계가 있다”며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수산업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일시적 현상이 아닌 생태계 구조 자체의 재편 과정”으로 분석한다. 한 해양환경 전문가는 “지금은 ‘얼마나 많이 잡을까’보다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바다를 살릴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어업 시스템 전환 없이는 국가 식량안보도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릉도의 ‘금징어 사태’는 단순한 어획 부진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식탁과 생업에 던지는 경고음이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어민의 생존권은 물론, 우리의 바다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이 울릉 앞바다에 드리워지고 있다.
ks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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