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원래 산도 강도 바다도 싫어하고, 천상 ‘차가운 도시남자’였던 그가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전국 팔도 여행에 나섰다. “예전엔 주변 길은 안 보고 목적지만 생각했던” 그는 창녕 우포늪 사이를 걸으면서 역사 속 인물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7일 개봉하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지도꾼’ 김정호으로 분한 배우 차승원(46) 얘기다.

“‘김정호가 백두산을 일곱 번 올랐다’는 잘못된 설도, ‘거기 올랐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는 말도 있지만, 제가 천지에 올라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족의 정산이고 애국가 첫 소절에도 나오는 백두산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정호가 한 번 정도는 가보지 않았을까….”

천지를 보고 그는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하늘 열리는 날”이었던 그날 그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맞닥뜨렸다. “천지의 색깔과 산의 모양새와 하늘이 삼등분 된 것처럼 눈앞에 펼쳐졌는데, ‘아, 이래서 백두산인가’ 싶고 경이로웠어요. 원래 저 산, 강, 바다 이런 거 싫어하는 사람인데.” (웃음)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시작에서 카메라는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봄에서 겨울이 되도록 뚜벅뚜벅 두 발로 걷는 김정호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조선 후기 정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국 지도를 그리고, 이를 목판으로 제작해 백성들과 나누려 했던 고산자 김정호다. 위대한 ‘대동여지도’는 남았지만, 그의 행적에 관해선 누구도 정확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 출생과 사망 연도마저 불분명하다.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는,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는 엄청난 고민이 뒤따랐다. 게다가 요즘은 역사 왜곡 논란도 민감한 문제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고산자’가 영화의 원작이기도 했지만, 김정호라는 사람을 그리는 것의 출발은 그가 남긴 대동여지도 목판본이었다.

“그걸 보면 정말 ‘억소리’가 나거든요. 정상적이지만은 않은 분 같았어요. 그 정도 만들려면 딴 데 신경 쓸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예술가였다고 생각했어요. 기인 구석이 많은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가 추구하고 집착했었던 목판본 제작과 맞아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도 “싱크로율 90퍼센트”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김정호의 초상화도 그에게는 실제 김정호를 상상하는 매개 중 하나였다.

“전혀 근거 없는 초상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기존에 ‘김정호가 전국 팔도를 걸음으로 걸어서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이 잘못된 이야기라고 해서 수정되고 있는데, ‘과연 이 사람이 지도를 만들면서 그냥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만들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 거에요. 초상화를 보면 야위고, 고생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얼굴이거든요. 모든 곳을 가 보진 않았겠지만 주요 장소는 가 보지 않았을까요.”

어렸을 때 텔레비전으로 보던 ‘조선왕조 500년’을 떠올리자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부담감이 몰려왔다.

“거기 나오는 인물이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김정호를 보는 관객도 그럴 것 같잖아요. 기록도 없고 설도 많은 인물이라 처음부터 부담스럽고 위험한 거였죠. 그래도 ‘지도에 미친 김정호’, 그 안에는 ‘사람 김정호’라는 걸 표현하면 내가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한 거에요.”

‘삼시세끼’(tvN) 등 예능에서의 소탈한 캐릭터가 덧대져 영화 속 김정호는 마냥 ‘미친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은 특유의 삼삼한 유머코드를 넣어 차승원의 캐릭터도 살리고, 김정호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전국을 누비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김정호가 음식을 하는 딸 옆을 맴돌면서 “‘삼시세끼’ 내가 해 줄 수도 있는데~” 라며 능청을 떠는 장면이라거나, 미래의 내비게이션을 연상시키는 대사 등이 영화 공개 이후 화제가 됐다.

위대한 일을 한 김정호이지만 공감 가는 ‘인간’으로 그려진 것은 평소 차승원이 가지고 있던 시각 덕인 것 같다.

“사람을 늘 예의주시해서 보죠. 맡는 캐릭터마다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 특별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공감 가는 특별함이어야지, 기괴함으로 다가가면 안 되잖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건강한 시각으로 봐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재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여덟에 데뷔해 연예계 생활만 어느덧 30년을 채워 간다. “싫은 티 좋은 티 팍팍 내고”, “욕심과 아집이 많았던” 젊은 시절을 지나 보내고 나니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요즘 들어서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겠고, 내 주변 사람들이 평안하고 평온해야 나 역시도 그 사람한테 동화돼서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날 개봉하는 영화 ‘밀정’과도 같이 잘 됐으면 좋겠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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