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누명 윤성여 씨 인터뷰
수사권한 없는 검찰, 유명무실 우려
“경찰, 막강했던 과거로 회귀” 경종
“자유당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누명을 쓰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 대신 20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가 검사의 보완수사를 포함한 직접 수사를 전면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해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며 “수사 전권을 쥔 경찰이 수사할 때 한 번만 더 되돌아봐 주십사 부탁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윤씨는 지난 7일 헤럴드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형소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형사사법체계 개편에 대한 의견을 풀어냈다. 과거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로 큰 피해를 입었던 그는 “검사가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직접 재수사할 수 없게 되면 억울한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견제가 약해지는 만큼 이제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며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1988년 이춘재 연쇄살인 가운데 8차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윤씨에게 고문을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에는 윤씨가 170㎝ 높이의 담을 넘어 자택에 침입해 범행했다고 적혀있었다. 윤씨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검찰과 법원도 조작된 경찰 기록을 걸러내지 못했다. 결국 윤씨는 20년을 복역하다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19년 진범 이춘재가 범행을 실토하며 시작된 재수사를 통해 윤씨의 결백이 뒤늦게 드러났다. 법원은 2020년 재심에서 경찰의 과거 가혹행위를 인정하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못하는 검사, 경찰 수사 검증 한계”=윤씨는 경찰 기록에 의존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만으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 억울한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개정된 형소법에 따르면 검사는 일체 수사할 수 없고 경찰이 송치한 사건 기록을 검토해 추가 수사하도록 경찰에 요구만 할 수 있다.
윤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경찰이 수사한 대로 검사가 기소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며 “경찰이 수사하면 그대로 끝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의 보완수사가 없다는 건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며 “검사가 경찰의 수사 기록을 보고 문제점을 발견해도 재수사하는 권한을 박탈당했는데, 경찰이 기록을 짜맞춘다 한들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씨는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수사권한이 없는 검사는 있으나 마나 한 검사”라며 검사가 사건 관계자를 면담할 수 있는 ‘사실 확인권’에 대해서도 “(검사에게) 얘기해도 검사가 밝혀줄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한 수사만으로 검사가 공소까지 판단하고 향후 재판까지 간다면 경찰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다”고 덧붙였다.
▶재심 변호사도 “보완수사 존치 필요” 지적=윤씨는 “경찰의 부당 수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더 교묘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을 보면 경찰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가 아직도 있고, 그 피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사람을 때리며 수사하던 시절의 경찰관들이 여전히 현직에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윤씨는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청 폐지와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에 대해 “검찰은 약해지고 경찰의 힘이 막강했던 자유당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의 권력이 강했을 때는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봤고, 검사의 권력이 강했을 때는 정치인들이 고초를 겪었다”며 “새 형사소송법은 권력자들에게만 좋은 법”이라고 꼬집었다.
윤씨의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도 보완수사 요구 제도의 한계를 지적한 바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 7월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수사기록 검토만으로는 담기지 않은 사정이나 숨겨진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검사가 수사기관이 작성한 기록만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면, 사건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조서 기소’가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검사의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리 역량 있고 성실한 수사기관이라 하더라도 수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하거나 미처 살피지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며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다시 확인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절차를 두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아린 기자
ar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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