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첫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 후 20년
정부 침묵 속 日에 사죄와 법적 배상 촉구
“국제사법재판소서 위안부문제 매듭지어야”
8월 14일 제9회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단 5명뿐
“역사학교 건립해 후손들 위한 교육 필요”
“너무 한이 맺히고 분함도 맺히고 원망시럽고…. 80년, 90년을 참고 살아왔으니 저는 지금도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는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 갈 때마다 그것이 가슴에 맺힙니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14일)을 앞둔 지난 10일, 대구 수성구의 자택에서 만난 이용수(98) 할머니는 세월이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 것 같다며 안경 밑 주름을 쓸어내렸다.
1992년 위안부로 피해받은 일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30년 넘게 인권운동가로 살며 나라 안팎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할머니는 부쩍 기력이 달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의 생활을 돕는 간병인은 “(할머니는) 지금도 피해를 증언하는 날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전했다.
현재 위안부로 동원돼 피해입은 할머니 5명이 생존해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할머니들은 투병 중이어서 거동이 어렵다.
그가 살아생전 가장 바라는 것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일본정부와 다퉈볼 수 있게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그리고 후손들에게 위안부의 비극적인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역사관을 세우는 일이었다.
“교육만은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끝까지 위안부 문제 교육은 풀어야 됩니다. 역사학교를 지어서 역사를 쭉 가르쳐가며 위안부 역사가 잊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발 이재명 대통령이 꼭 우리 한국과 일본 간 역사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증언하던 사람들이 떠날수록 위안부 문제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할머니는 이 사실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세대가 지나도 실상을 이어서 알리고,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위안부 역사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학교가 세워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간 젊은 사람들이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고 서로 교류해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수십 년째 답보 상태인 협의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일본과 한국은 남이 아니다. (양국의)역사를 풀어야 한다”며 “더 이상 소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여태껏 활동을 해왔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먼저 떠난 할머니들에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향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바라는 소망으로 “(위안부 문제 제소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했다”며 “안 되면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에 단독으로라도 (제소)하자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간다고 그러고 또 안 갔다. 제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토로했다.
이 할머니는 2024년 5월 한일 정상회담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읽으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승소 판결을 즉각 이행하고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2007년 미 의회 ‘위안부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
일제는 1932년 중일전쟁 이후 군의 사기 유지 등을 명분으로 위안소를 설치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11세에서 32세에 이르는 젊은 여성 약 20만명이 불법적으로 끌려갔다. 이 할머니는 1944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해군 함정을 타고 대만에 주둔하던 일본 군부대에 끌려갔다. 강제 성추행을 거부했을 때 전기 고문을 당했던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이듬해 이 할머니도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1994년에는 당시 일본 법무성 장관이던 나가노 시게토의 ‘위안부는 공창이었다’는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을 찾기도 했다.
2000년에는 도쿄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증언했고 2007년에는 미국 의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을 때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실상을 증언하며 국제사회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구회근·황성미·허익수 부장판사)는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의 유족 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전원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이유로 소송을 각하한 1심과 달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서울고법의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1인당 2억 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그간 국내에서 진행된 위안부 관련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015년만 해도 238명이었다. 현재는 이용수 할머니를 포함해 단 5명뿐이다. 생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93년부터 이 할머니와 인연을 맺어온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최봉태 이사장은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청구권을 놓고 한일 양국 간 분쟁이 있는데도 정부가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며 “정부가 일본 정부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도 나서지 않는다면 위헌 상황을 지속시키는 헌법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201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당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린다.
행사를 주관하는 성평등가족부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활동을 미래 세대에 이어갈 수 있는 교육·기록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며 “(가칭)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재단이 설립되면 국내외 연대 활동은 물론 현재 민간에서 운영 중인 지역 역사관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역사관들이 그동안 국가가 맡아야 할 역할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온 만큼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예산 지원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는 지난 6월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교육, 전시, 기념사업을 비롯해 국내외 연대·협력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일본군위안부 문제연구소에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예산 조직 등 사업 추진 권한 한계로 독립적인 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전 의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며 “9월 4일 역사정의포럼과 함께 국회에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공론화 작업을 거쳐 하반기에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강일출 할머니가 지난 3월 별세하면서 국내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해 박필근(98) 할머니, 김경애(96) 할머니, 그리고 본인 또는 가족의 요청에 따라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피해자 2명 등 모두 5명만 남아 있다. 생존 피해자 모두 90세 이상의 고령이다.
대구=김도윤 기자
ki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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