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 경장 피의자 직접조사에 인권위 ‘제동’

형소법에 피의자신문은 경위 이상만 가능해

상위법·내부규정 서로달라, 적법절차 논란

안그래도 사건 많은데…실무와 제도의 괴리

경찰관이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실에서 피의자신문을 진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미지 [AI로 제작]
경찰관이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실에서 피의자신문을 진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미지 [AI로 제작]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경찰 수사 현장에서 경사·경장·순경 등 법적으로 ‘수사 보조자’인 경찰관이 사실상 피의자신문을 맡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서 경장 계급의 수사관이 임의로 실종자 사건을 임의 종결시킨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경찰청에 규칙 개정을 강력히 권고했다. 경찰은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30일 경찰과 인권위 등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달 10일 경찰청장에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주체를 규정한 ‘경찰수사규칙’ 제39조를 형사소송법에 맞게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경위 이상을 수사 주체인 ‘사법경찰관’으로, 경사·경장·순경은 수사를 보조하는 ‘사법경찰리’로 구분한다.

반면 경찰수사규칙은 사법경찰관과 사법경찰리를 포함한 ‘사법경찰관리’가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를 내리기에 앞서 지난해 전남의 한 경찰서 소속 순경이 사기 혐의 피의자를 독자적으로 신문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조서까지 작성한 일을 조사했다. ‘개방된 조사실에서 피의자신문을 받아 조사 내용이 노출될 우려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정에 따른 것이었는데, 인권위는 실제 개인정보 유출은 없었다며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순경의 독자적인 피의자 신문이라는 별도의 문제를 확인했다. 수사 보조자가 사실상 사법경찰관의 권한을 행사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경사 이하가 경찰의 75%…“경위만 조사하기엔 사건 너무 많아”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해당 경찰서만의 예외적인 사례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복수의 일선 경찰관들은 경사 이하 경찰관이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의 피의자신문을 직접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북권의 한 일선 경찰관은 “사수가 검토는 해주지만 경사 이하라도 숙달되면 피의자 조사를 혼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경위 이상만 피의자신문을 받기에는 인원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계급별 인원 구성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드러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관 13만1399명 가운데 순경 3만8534명, 경장 3만1404명, 경사 2만8787명으로 경사 이하만 9만8725명, 전체의 약 75%를 차지한다. 반면 경위는 1만7497명, 경감은 1만1056명으로 전체의 약 21%다.

수사 부서는 하위직 비중이 더 높은 경우도 있다. 한 경찰 수사팀장은 “수사 부서 구성원의 80% 이상이 순경·경장·경사인 경우도 있어 이들이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다만 모든 사건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해 팀장과 과장 등의 결재를 받고 사법경찰관이 여러 차례 점검하는 절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동북권 경찰서 수사과장도 “사건 접수 건수가 너무 많아 실질적으로 사법경찰관이 전부 하기에는 힘들다”며 “구성원 가운데 경사 이하가 많아 인권위 권고대로 모두 맞춰 업무하기에는 실무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한 경찰관이 사무공간, 조사실, 진술녹화실, 대기실 등의 수사공간 CCTV 화면을 지켜보는 모습. [연합]
한 경찰관이 사무공간, 조사실, 진술녹화실, 대기실 등의 수사공간 CCTV 화면을 지켜보는 모습. [연합]

경찰청은 사법경찰관의 실질적인 관리·감독 여부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사법경찰리가 사법경찰관을 보조하게 돼 있고 조서 작성 자체는 형식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다만 독자적으로 하게 되면 문제가 있고 관리·감독을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2년 전에도 지적…경찰청, 규칙 개정 검토

해당 문제는 2024년에도 한 차례 지적됐다. 당시 인권위는 경찰수사규칙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표명’을 했지만 현장에서 개선되지 않자 지난 7월 10일 경찰청장에게 보다 강제성이 높은 ‘정책권고’를 내렸다. 인권위 관계자는 “의견표명과 달리 정책권고는 경찰청이 90일 이내에 이행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며 “같은 문제가 일선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정책권고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도 제도 개정 검토에 들어갔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 관계자는 “현재 논의하고 검토 중”이라며 “수사준칙 관련 논의에서도 이 부분이 쟁점이 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갑자기 사법경찰관만 무조건 전부 해야 한다고 하면 실무상 문제가 있다”며 “현장에 사법경찰리가 매우 많은 부분도 감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모습. [연합]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모습. [연합]

경찰청은 다음 달 인권위에 직접 출석해 검토 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 관계자는 “다음 달 인권위에 출석해 이 부분을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현장에서는 적법절차를 지키면서도 수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규칙 개정과 함께 인력 확충과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일선서의 한 수사과장은 “앞으로 검찰이 가지고 있던 사건이 얼마나 경찰로 내려올지 몰라 업무 증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기존 사건에 업무까지 가중되면 일선 직원들이 고스란히 맡게 된다. 인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잘하는 사람을 미리 확보하고 교육해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ookapook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