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은행 머니무브 가속화

정기예금 잔액, 2개월 만 55.8조 늘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에 지속 증가 전망

서울 시내 마련된 주요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뉴시스]
서울 시내 마련된 주요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뉴시스]

[헤럴드경제=서상혁 기자] 주식시장의 박스피 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은행 정기예금으로 시중 자금이 옮겨가는 역머니무브가 활발하다. 대기성 자금인 증권 예탁금은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겼다. 은행권도 특판 예적금을 잇달아 출시하며 떠나간 개인투자자를 끌어모으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 등 국내 5대 은행의 8월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1005조2319억원으로 집계됐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100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해 9월말 950조7015억원에서 올 3월말 937조4565억원으로 감소했다가, 6월말 949조3998억원, 지난 달 6일 991조4441억원으로 급증했다. 약 2개월 만에 55조8321억원이 늘었다.

정기예금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주요 원인은 주식시장 조정 장기화가 꼽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올 상반기까지 주가가 급등했는데, 이 기간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급격히 빠졌다. 7월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제기되면서 주가가 하락하자 은행에서 나갔던 자금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연말 87조8291억원에서 올 6월 121조6340억원으로 늘어난 후 8월말 99조7044억원으로 급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손실이 나면 안되는 결제 대기성 자금을 무위험 금융상품인 정기예금에 적극적으로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예금 잔액이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기준금리가 오르면 주식시장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인공지능(AI) 관련주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여전하다는 점도 안전자산 선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권 입장에서도 정기예금 증가세는 반가운 현상이다.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주요 조달 수단인 은행채 금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로 높아진 조달 비용을 대출금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은행채보다 상대적으로 조달 비용이 낮은 정기예금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치를 1.5%에서 3.0%로 상향 조정한 데다 생산적 금융 확대 등으로 은행의 자금 수요도 커지고 있다.

실제 은행들도 각종 특판 상품을 내놓는 등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달 연 최고 9%의 ‘신한 적금 9단’을 출시했다. 우리은행도 연 최고 8.29%의 ‘우리의 소원 적금’, 농협은행은 최고 연 8.15%의 ‘NH농심천심적금’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연 3.20~3.30%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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