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재난, 우리가 복구한다?”
태풍, 폭염, 가뭄, 해일, 산사태 등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남기는 자연재해.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겨도, 누군가를 붙잡고 “당신이 망가뜨렸으니 물어내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흔히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여져 온 이유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대규모 재난 피해를 입은 한 국가가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주요국을 향해 ‘복구 비용’을 부담하라는 요구를 내놓은 것.
얼핏 들으면 황당하다. 하지만 이들이 꺼내든 근거를 따라가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바로 재난 자체를 누가 직접 일으켰는지가 아니라, 재난의 원인인 기후위기를 만드는 데 누가 더 많이 기여했는지를 따져 피해 비용까지 나눠야 한다는 것.
점차 기후변화가 요인이 된 재난이 이어지면서, 이같은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중국 등에 가려져 있을 뿐, 한국인 한 명이 내뿜는 탄소의 양은 세계 상위권 수준에 해당한다. 향후 타국에서 발생한 기후재난에 대해 더 큰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6일 네팔 북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다. 빙하와 암반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얼음과 바위, 흙이 거대한 급류가 돼 하류를 덮쳤다. 마을은 물론 도로와 교량, 수력발전 시설까지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알려진 사망자만 1200명이 넘은 상태, 여전히 수천 명이 실종 상태에 있다. 다시 지어야 할 주택도 2만채에 달한다.
문제는 복구 비용이다. 네팔 정부가 예상하는 재건 비용은 최소 40억~50억달러 수준이다. 한화로 약 5~7조원으로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 해당하는 규모다. 나라가 1년 동안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10%를 재난 수습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
네팔은 이 돈을 오롯이 자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보고 있지 않다. 중국과 미국, 인도 등 다른 국가를 향해 사실상 ‘계산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장관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난 지원을 바라보는 기존 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한 ‘원조’가 아닌 ‘정의와 보상’을 요구하겠다는 것.
특히 중국과 미국, 인도 등 세계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해 온 국가들을 직접 언급하며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네팔 재무부는 국제 파트너들을 상대로 기후 보상과 관련한 공식 서한까지 발송했다.
네팔이 다른 나라에 책임을 묻는 배경에는 이번 재난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이 있다. 이번 재난은 단순히 많은 비가 내려 발생한 홍수와는 달랐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얼음과 바위, 흙이 강으로 쏟아졌고, 거대한 급류가 만들어져 하류 지역을 덮쳤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히말라야의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고산지대의 지반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산비탈과 암반을 붙잡고 있던 얼음이 줄고, 녹은 물이 암석 틈으로 스며들면서 산사태와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힌두쿠시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 면적은 1990~2020년 약 12% 줄었고, 2000년 이후 얼음이 사라지는 속도는 이전보다 약 두 배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기후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 몫은 작지만 피해는 크게 떠안고 있다는 게 네팔의 주장이다. 네팔의 2024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약 0.05%에 불과하다. 이번 재난의 원인이 탄소배출이라고 단정할 경우, 네팔의 잘못은 0.05%에 불과한 셈이다.
국민 한 명이 내뿜는 양은 더 적다. 네팔의 2024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63톤이다. 문제는 기후재난에 따른 피해가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가난한 국가들에 유독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실제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에 따르면 세계 최빈개도국이 지금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한 비중은 약 1%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 50년간 기후 관련 재난으로 발생한 사망자의 약 70%는 이들 최빈개도국에서 나왔다.
재난 자체가 이들 국가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1970~2019년 최빈개도국에서 발생한 기후 관련 재난은 세계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사망자는 약 70%를 차지했다. 인프라와 재난 대응 능력에 따라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것.
돈도 마찬가지다. 2015~2024년 최빈개도국이 재난으로 입은 직접 경제손실은 이들 국가 GDP의 3.22% 수준이었다. 세계 평균은 0.28%로 최빈개도국이 감당하는 피해 부담이 세계 평균보다 11배 넘게 컸다.
돈이 많은 국가는 재난이 발생하기 전부터 제방이나 배수시설을 갖추고,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집과 시설이 부서져도 보험과 정부 재정을 이용해 다시 지을 여력도 상대적으로 크다. 반대로 가난한 국가에서는 애초에 재난을 막을 돈부터 부족하다.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돈 역시 크게 부족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개발도상국이 홍수와 폭염, 가뭄 등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2035년에는 매년 최소 310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23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간 국제 공공 적응 재원은 260억달러에 불과했다. 필요한 돈의 약 12분의 1 수준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3월 기준 전 세계 27개 파트너가 해당 기금에 약속한 금액은 8억2206만달러에 그친다. 네팔 재난 한 번의 재건비가 40억~50억달러로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 기여도가 높은 선진국들이 기후재난 대응에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매켄지&컴퍼니 매켄지 글로벌연구소(MGI)에서 내놓은 탄소중립 이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5톤 수준. 세계 평균치(7.3톤)와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10톤), 중국(9톤)과 비교해서도 뚜렷하게 높은 수치로 미국(19톤)과도 맞먹는다.
곧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 바 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지난 2021년 기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공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경우 2030년 한국이 이들 가운데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글로벌 환경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고, 이에 따른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우리 또한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정부 또한 기후변화 대응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국민에 지속적으로 알릴 책임이 있다”고 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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