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경 연중기획 ‘사기공화국의 민낯’
1분기 만에 지난해 피해액 절반 채워
‘독점 정보’로 유혹해 피해자 모집
로맨스스캠 등 신종 피싱 범죄도 경계령
서일준 의원 “금융당국 철저히 점검해야”
[헤럴드경제=서상혁 기자] #투자자문사 영업과장 출신 A씨는 과거 자신이 일했던 경험을 살려 친구 네 명과 텔레그램 리딩방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경기도 부천시 모 빌딩에 사무실을 얻은 A씨는 컴퓨터를 비롯해 각종 대포폰, 약 3000개의 투자자 데이터 등을 모았다. 자금세탁 총책인 B씨와도 수익금을 어떻게 나눌지 협의를 마쳤다. A씨의 지시에 따라 리딩방 조직원들은 텔레그램에서 불상의 투자자들에게 “C주식을 공모가보다 1만원가량 저렴하게 매수하게 해주겠다. 불러주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주식이 배당될 것”이라고 유인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A씨와 조직원들이 편취한 자금은 약 5억원에 달한다. 법원은 올 1월 A씨에게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코스피 지수가 1년 만에 두배 넘게 뛰는 등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악용한 ‘투자사기형 피싱’사기도 점점 들끓고 있다. 벌써 올 1분기 투자사기 누적액이 지난해 전체 피해액의 절반에 달했다. 특히 피해자 10명 중 7명이 중장년층일 정도로 노인에게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말 기준 투자사기형 피싱 피해액은 1817억원, 6769건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총 2260억원, 9788건이다. 전체 피해액의 80%가 투자사기형 피싱에 집중된 것이다. 투자사기형 피싱이란 A씨와 같이 불법 투자리딩방을 개설해 독점 정보가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꾀어 투자금을 편취하는 유형을 말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피해액과 건수가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에 불이 붙으면서 투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점을 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한해 동안 발생한 투자사기 피해액은 3916억원, 피해건수는 1만1468건이다. 1분기 만에 피해액 기준으로 전년도의 46%를 채웠다.
노년층이 범죄의 집중 타깃이 됐다. 전체 피해건 중 50대 이상 비중은 75.2%에 달했다. 50대가 2243건, 60대 2230건, 70세 이상은 619건이었다. 피해액 기준으로는 80.6%가 50대 이상에 몰렸다.
금융업권별로 보면 은행에서 2900건, 증권사 등 금융투자사에서 2129건이 발생했다. 상호금융도 1676건으로 나타났다.
대출빙자형과 사칭형 범죄는 일단 감소세로 접어든 모습이다. 대출빙자형이란 저금리나 높은 한도의 대출을 내어준다고 꾀어 투자금을 편취하는 범죄로 자금난에 빠진 차주를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황형 피싱’으로도 불린다.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은 지난 2022년 1781건, 2023년 3615건, 2024년 7375건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2025년에는 7202건으로 다소 줄었다. 올 1분기에는 1123건으로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했다.
메신저 사칭이나 기관 사칭형의 경우 2023년 1만7786건에서 2024년 1만1416건으로 줄어든 후 2025년 1만4571건으로 다시 늘었다. 올 1분기 기준으로 1896건으로 증가 속도가 둔화됐다.
다만 날이 갈수록 범죄수법이 교묘해져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기관사칭형이나 로맨스스캠이 들끓고 있다. 올 2월엔 캄보디아에서 파생된 태국 범죄조직 ‘룽거컴퍼니’에서 로맨스스캠 팀장을 맡은 안 모 씨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1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팀을 관리하며 700여명으로부터 150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투자사기와 로맨스스캠 등 신종 피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계좌 임시정지 조치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서는 의심 계좌에 대해 즉시 지급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만 투자리딩방 사기나 로맨스스캠은 재화의 교환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금융회사로서는 보이스피싱으로 판단하고 계좌를 정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금융당국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과 특정금융정보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금융회사가 사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신종피싱·보이스피싱 등 범죄유형과 관계없이 사기범죄 의심이 있는 경우 계좌를 3일간 임시 정지시키고, 경찰에서 해당 범죄를 신종 피싱으로 확인한 경우 정식 거래 정지 조치를 취하는 식이다.
최근엔 금융·통신·수사분야의 보이스피싱 관련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는 AI 플랫폼을 구축, 계좌정지· 통신차단·범인검거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 공유체계를 마련했다.
서일준 의원은 “고령층을 노린 신종 금융사기가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계좌 임시정지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금융당국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hy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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