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은 문자의 날이지만, 우리는 언어의 날까지 넓혀서 생각합니다. 바른말을 쓰자고 하거나 외국어 사용을 조심하자고 하는 것도 모두 언어의 문제로 넓힌 겁니다. 그래서 한글날은 이제 한국어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글과 우리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날이 한글날인 셈입니다. 하지만 늘 지적하듯이 한글날만 한글날입니다. 그러니 변화가 힘듭니다.
한글날은 문자의 날이어서 한자 사용을 죄악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태도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간판에 한자가 쓰여있으면 중국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중국에서 쓰는 한자와 우리가 쓰는 한자가 다른데도 말입니다. 한자는 펄쩍 뛰면서도 알파벳은 무덤덤합니다. 길가에 수많은 알파벳이 있습니다. 아니 텔레비전만 켜도 알파벳 천지입니다. 한글날은 한글의 날입니다. 한자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알파벳의 문제도 공정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조차도 한자를 아주 쓰지 말자는 생각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도 알파벳을 쓰지 말자는 말은 아닙니다. 한자도 알파벳도 생각하면서 써야 합니다.
한글날만 되면 문해력 이야기로 언론이 도배가 됩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특이한 예를 들어서 희화화(戲畫化)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스마트폰이나 게임, 독서 부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한자를 배우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빠지지 않죠. 한자 교육에 대한 찬반 입장은 ‘날’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자를 가르치면 문해력이 좋아질까요? 사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문해력과 어휘력의 구별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자를 몰라서보다는 어휘 공부를 하지 않아서 어휘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휘(語彙)’의 한자는 무슨 뜻인가요?
아이들의 문해력을 걱정하는 어른을 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걱정하지만,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들의 게임을 걱정하지만, 성인은 유튜브에 하루 종일 빠져있기도 합니다. 청소년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른은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2025년 성인 독서 실태 조사에서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이라고 합니다. 본인은 책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독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책은 청소년이 성인보다 훨씬 많이 읽습니다. 아이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범을 보이는 겁니다. 올해 나는 책을 몇 권 읽었습니까?
한자를 가르칠 것인가 하는 논쟁에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가르칠 사람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자를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사실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 기본적인 한자도 모릅니다. 몇 십 년 전 대학교재에는 한자가 많았습니다. 지금 그 책들은 대부분 폐기 대상입니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습니다. 한자를 반드시 쓰게 하는 학술지도 있는데, 한자가 많으면 인용률이 떨어집니다. 읽지 못하니 인용을 못합니다. 모두 한자를 배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자, 한문’의 전문가 양성이 심각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학자들이 예전에 쓴 책을 읽고 이해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글이 있어서 우리 언어생활이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할 겁니다. 종교인이어도 성경을 못 읽고, 불경을 못 읽겠지요. 간단한 편지를 쓰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문자도 보내지도 읽지도 못하는 답답한 세상일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한글 창제는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글이 보여주는 세상도 기억해야 합니다.
글을 몰라 불쌍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글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 글 때문에 손해 보는 세상은 옳지 않습니다. 어찌 글뿐이겠습니까? 외국어를 몰라서 차별받아도 안 됩니다. 한국어를 몰라서 차별받아도 안 됩니다. 그 무엇 때문이라도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문해력의 핵심은 이해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글을 읽었다면,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종의 한글 창제에 관한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우리다움’을 고민해야 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그게 한글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bigroot@heraldcorp.com
![“나라에서 가져가는 땅인데 세금까지 내라고?” 보상 받아 좋았는데 억대 양도세 웬 말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08/news-p.v1.20261008.b011671378a346e6a2f29929a7d08511_T1.png?type=h&h=240)
![200조 넘보는 미래기금…‘쌓는 법’은 있는데 ‘쓰는 곳’은[Deep Spot]](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07/news-p.v1.20260929.87a99d5ea3d640ec8d1d6ee2c1be166c_T1.jpg?type=h&h=240)
![40년 ‘반도체 검증’ 큐알티, AI·우주 타고 ‘퀀텀점프’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08/news-p.v1.20261007.738890c4e3254a89acb060a52fdb8c61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