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노사정 협의기구(TF)는 확정기여형(DC) 적립금을 전문운용기관이 집합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기금형 제도가 가입자의 운용수익률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방안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 여부가 새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공단은 공적기금을 운용하는 전문기관이라는 점에서 협의기구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단은 직접 운용은 물론 위탁 운용까지 맡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운용목적과 방식, 제도적 특성이 다른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없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사정 협의기구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단의 기금운용이 정치적·정책적으로 충분히 독립됐는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근 리밸런싱 유예와 국내 주식 목표 비중 확대를 둘러싼 자본시장의 반응은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의사결정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그대로 보여 준다. 바클레이즈는 리밸런싱 유예가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는 석 달 만에 182조원의 운용 손실로 이어졌다. ‘정치연금화’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의 노후자산을 더 맡기는 일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둘째, 기금운용 전문성이 퇴직연금에 진출할 만큼 충분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상당 부분(약 50%)은 이미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돼 운용되고 있다. 지급보장 조항을 명문화한 국민연금법 개정이 2026년 1월 시행된 뒤로는 연금급여의 장기 지급 의무와 재정 안정성을 연계하는 자산부채종합관리(ALM)의 중요성이 커졌다. 본업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새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는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셋째, 수익률 비교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 2025년 국민연금 18.82%, 퇴직연금 6.47%라는 약 3배의 격차를 참여의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비교 대상 설정의 오류이다. 기금형 제도의 본질이 DC인데,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한 DC 가입자의 수익률은 19.8%로 오히려 국민연금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금의 구조적 특성도 명확한 차이가 있다. 재정 고갈 우려에 몰린 국민연금과 장기 성장이 전망되는 퇴직연금은 자산 배분 전략부터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방향이 다른 두 기금을 한 기관에 맡기는 것이 수익성과 안정성 어느 쪽에도 결코 적절하지 않다. 정책의 본질은 이해 갈등의 합리적 해소에 있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원칙에 의존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연금정책은 세계은행(W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일관되게 권고해 온 다층연금체계에 기반한다. 1층 국민연금, 2층 퇴직연금, 3층 개인연금의 관리와 운용 주체를 철저히 분리해 노후자산이 단일한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공단의 참여 논의는 다층연금체계라는 글로벌 표준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제도의 본질을 도외시한 소모적 논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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