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토(土)에서 유래한 농업인의 날…가래떡 모양 닮기도
-허리 펴고 직립하는 모양의 숫자 ‘1’에서 유래한 뜻 깊은 날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여러분, 저는 ‘11월 11일’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하소연 좀 하려고요. 사실 저는 그냥 365일, 지나가는 날 중의 하나였을 뿐이에요. 제 친구인 10일이나 12일하고 전 차이가 없어요. 그냥 전 11월 11일이에요.
그런데 제 몸매가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순간 전 ‘빼빼로데이’가 됐어요. 사람들은 전부 “빼빼로데이인데 받았어?”나, “빼빼로데이인데 누구 줄꺼야?” 같은 말만 해요.
빼빼로 만드는 제과업체가 노리고 만든 상술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작 저보고 “상술을 조장하네”라고 뭐라 하고, “애들 이 썩게 만드네”라고 또 뭐라 하고. 제가 원해서 이렇게 빼빼 마른 몸으로 된 건 아니잖아요. 1월 1일로 빼빼로데이 해도 되는데, 걔는 설날이라고 멋있게 불러주면서, 왜 나만 구박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뭐 꼭 빼빼로를 풋풋한 고등학생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저의 이 빼빼 마른 몸매에서 다른 깊은 뜻도 찾을 수가 있어요.
저는 1997년부터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었어요.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죠. 그래서 흙토(土)자를 풀어서 쓰면 열십(十)자와 한일(一)자를 겹친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이 됐어요. 어때요. 뭔가 있어보이죠?
그래서 이날에는 경제논리로만 풀 수 없는,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챙겨야 하는 이 땅의 쌀과 그 쌀을 키워내는 농민들을 위한 날로 각종 행사가 줄지어 있었어요. 근데 요즘엔 아무도 잘 안 챙겨주네요. 그나마 ‘가래떡데이’ 정도로 다시 이름붙여지고 있긴 한데. 떡볶이나 사먹고 끝나겠죠 뭐.
그리고 저는 또 다른 좋은 날인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해요.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2001년부터 저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제가 지체장애인의 날이 된 이유요? 숫자 ‘1’은 허리를 꼿꼿하게 편 모양이잖아요? 그래서 신체적으로 조금 불편한 지체장애인들의 직립을 희망한다는 의미에서 지체장애인의 날이 됐어요. 그리고 지체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첫 번째로 소중하게 여기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도 있다고 하네요. 어때요. 정말 뜻 깊은 날이죠?
저는 미국에서는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불리기도 해요. 1차 세계대전의 종전기념일인데요. 살아 돌아온 군인들을 기념하는 날이죠. 중국에서는 ‘광군제(광곤절ㆍ光棍節)’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숫자 ‘1’이 외롭게 혼자 서 있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독신자들끼리 선물을 사는 행사도 많이 벌어져요.
어때요. 여러분이 봐도 저는 빼빼로데이보다 훨씬 뭔가 ‘있어’ 보이는 날들이지 않아요? 제가 억울할 만 하지 않나요? 내년엔 절 다른 이름으로 꼭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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