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고라·로마 포럼…세상을 바꾼 역사의 광장 中 톈안먼 6월 오면 긴장감

저항의 상징 터키 탁심광장…1년째 시위 소용돌이에

가톨릭 신자의 성지…바티칸 성베드로광장…교황 친서민 행보로 새모습

중국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내달 4일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맞아 반체제 인사들 사이에서 기념 시위를 벌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당국은 경비 인력을 늘리고 사전에 주요 인사들을 소환하는 등 미리부터 ‘광장 틀어막기’에 힘을 쏟고 있지만 모두 저지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리스 아고라, 로마의 포럼 등 고대부터 광장은 세상을 뒤바꾼 역사의 현장이었고 소통과 화합, 저항정신, 당대의 문화가 결집된 공간이었다. 지금도 전 세계 각지의 광장들은 변화의 중심에서 사회를 바꾸는 시발점,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화합의 장소가 되고 있다.

▶광장, 분열과 저항의 공간으로…=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과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은 기존 정권에 대한 저항과 희생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돋보였던 곳이었다. 지난해 5월, 터키 국민들은 탁심광장의 게지공원 철거에 분노하며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공원 철거와 쇼핑몰 건설 반대 운동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탁심연대’가 구성되며 조직화됐고, 점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공권력을 동원해 수천 명의 시위대를 여러 차례 강제 진압했다. 5월 말부터 시작된 시위는 1년 째를 바라보고 있다.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있었던 탄광 사고는 저항의 불씨를 다시 당겼다. 에르도안 총리 등 집권 세력과 정부의 무능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연이은 시위 속에 탁심광장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광장은 아직도 시위대의 열기로 불타오르고 있다.

이곳은 분열의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1969년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잡고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좌파 시위대 3만명이 들고일어나 탁심광장으로 행진했고 진압병력과 충돌해 150명의 부상자가 발생,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게 됐다. 1977년 노동절에도 좌우진영의 충돌로 좌파 시위대 36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치의 상징 독립광장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축출을 이끌어낸 장소이자 10년 전 오렌지혁명의 발원지이다.

지난해 야누코비치 정권은 유럽연합(EU)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다. 국민들은 이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친서방 정권 수립에 성공했다.

수만 명이 독립광장에 운집해 노선 선회와 퇴진을 요구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 그래도 민중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대한 강력한 퇴진 요구에 크림반도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우크라이나는 오는 25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쿠데타와 정쟁으로 얼룩진 태국도 시위의 중심에는 방콕 민주광장이 있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광장 역시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뜨거운 저항의 현장이다.

▶바티칸 성베드로광장, 교황님 덕에 달라진 풍경=지난해 3월 바티칸의 성베드로광장은 수십만의 인파로 가득 찼다. 콘클라베가 열린 시스티나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광장에서 새 교황의 탄생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독특한 친서민 행보 때문에 성베드로광장의 풍경은 달라졌다. 즉위 미사부터 간소화됐고 차량을 타고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교황의 강론 도중엔 한 소년이 강단에 뛰어들어 교황에게 매달리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매주 수요일 일반 신도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어려운 점들을 해결하려 하기도 했다. 미국 이민법 문제로 고통받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했고 수십만 명의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기도 했다. 성베드로광장은 1656~1667년 알렉산더 7세 교황 시절 건축가 기안 로렌조 베르니니가 설계해 조성됐다. 가톨릭 신자들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광장은 서민들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러시아의 붉은광장, 푸틴의 나팔수들 모여=올 들어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선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 각종 행사가 치러졌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합병 등으로 미국 등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는 소련 냉전시대로 다시 되돌아간 듯한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3월 크림반도 합병이 결정된 이후 축하 행사가 벌어졌고 붉은광장에 운집한 국민들은 ‘푸틴’을 연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과 세바스토폴이 고향 러시아로 돌아왔다, 러시아에 영광을”이라고 외치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민심을 얻고 합병을 정당화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계산은 그대로 통했다.

지난 1일 노동절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노동절 기념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행사에는 10만 명 이상이 참가했고 노동절을 기념하는 문구와 함께 ‘조국이 자랑스럽다’, ‘푸틴이 옳다’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해 국민들의 민심을 반영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이날 행사를 “최근 고조된 애국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9일엔 제2차세계대전 승전 69주년 기념행사에서 1만여 명의 군을 동원에 성대한 승전 퍼레이드를 펼쳤다. 무력시위를 하듯 이날 행사에서는 150여개 무기가 등장했으며 신형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Tor-M2U’도 모습을 드러냈다.

옛 소련 시절부터 퍼레이드와 공산주의 선전 등이 이뤄진 곳이 붉은광장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중단된 승전기념 퍼레이드는 2008년부터 재개됐고 대대로 붉은광장은 ‘강한 러시아’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선전의 장이 되고 있다.

문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