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 기자]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24일 방송에서 촛불에 가려져있던 이야기들을 돌아보고 2016년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의미를 되새겼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던 6월 13일, 경기도 양주의 어느 시골길에서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친구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두 여중생이 친구의 집이 아닌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참혹한 상태로 발견된 것. 두 소녀의 이름은 미선이와 효순이. 길을 걷다 뒤에서 오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무참히 압사를 당했던 것.

“(애들) 옷을 보고 안 거지. 얼굴 형태 봐가지고는 몰라요. 완전히 으스러져 버려서.”(故 심미선 이모부)

그 이후 훈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미군에 대한 지탄이 쏟아졌지만 그해 11월 20일, 장갑차를 운전했던 운전병과 관제병이 차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판결의 이유가 운전병은 두 소녀를 보지 못했고, 관제병은 두 소녀가 있으니 피하라고 운전병에게 전달했지만 통신장애가 있어서 전달이 안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거거든요.”(당시 여중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그것이 알고싶다’는 미국의 수사기록에는 그날 통신장애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사람을 처참하게 죽여 놓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에 분노한 시민들은 미군 2명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고, 그 분노는 온 국민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광장에선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미선이, 효순이 살려내라‘고 외쳤다.

사람들의 분노가 모여 커다란 촛불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했다. 제종철 씨도 그런 사람중 한 명이었다. 제종철 씨는 지역의 소규모 시위를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전환시키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제종철 씨가 미군 무죄평결 1주년 기념 촛불집회가 있었던 그날 철로 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그 남성이 철로 위에 누워 있다가 열차에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미선이,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서 촛불을 들었다가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난 그의 석연찮은 죽음에 사람들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꼭 열차 사고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목뼈와 왼쪽 발목, 이 두 개의 뼈가 왜 골절이 됐을까 시신이 누워있는 상태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요. 이는 자동차 사고, 추락사고로도 가능해요.”(서울대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

“(남편이 마지막 통화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내일 통화할께 하고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끊어야 되는데, 뭔가 얘기를 하는데, 어 그래, 글 어 알았어 라고 말하며 탁 전화를 끊은 게 있었다”(고 제종철 씨 부인)

이상한 점은 시신의 상태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가 발견된 곳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철로였고, 경찰들도 그가 왜 그곳까지 걸어간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날 촛불시위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정치적인 테러를 한 게 아닌가”(당시 여중생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2002년 이후로 2004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등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선 촛불이 켜졌다. 그때마다 촛불을 꺼뜨리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2016년 촛불은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폭력적인 마찰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촛불집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초기부터 순수한 학생, 어린 학생들이 앞장 섰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이날 시청률은 8.9%(닐슨코리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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