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왜 달리세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승복을 입고 깊은 산중에 있어야 할 스님이 속세로 나와 탁발마라톤을 하니 궁금한 것이다. 맨살을 드러내는 일을 금기시하는 불교계에서는 가벼운 차림으로 뛰는 스님의 모습을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법명을 내려주신 큰스님이 “팬티만 입고 뛰는데, 앞으론 그러지 마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진오 스님(54 조계종)은 ‘달리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를 고민하다가 19살에 출가했다. 그리고 1987년 2월 공군 군법사 활동 중 교통사고로 왼쪽 눈이 실명되면서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장애인과 승려의 삶을 살던 중 1999년 금오종합사회복지관 개관으로 무리를 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이때 주위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 모든 번뇌를 잊고 집중할 수 있었다. 스님은 “좌선(坐禪)이 있다면 마라톤은 ‘주선(走禪)’이라고 할 수도 있죠”라고 말했다.
그렇다. 스님은 마라톤을 수행이라 여긴다. 수행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든 행위로 대표적으로 절 수행과 참선 수행이 있다. “마라톤 10km는 절 108배이고 21km는 300배이며 42km는 1080배, 마지막으로 100km는 3,000배와 같은 땀과 번뇌가 섞이면서 차츰 고요함을 얻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스님은 “앞으로 80세 까지는 달리려고 해요”라며 운동선수 같은 각오를 보였다.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2014년 출간된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의 인세는 전액 사단법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에 기부된다. 12년간 끊임없이 달려온 진오 스님의 삶과 스님을 달리게 했던 많은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남다른 수행의 과정이 담겨 있다. 부처나 예수가, 그리고 진리가 반드시 절이나 교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진정 중요한 것은 삶의 주변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성인들이 설파한 말씀을 실천하는 일임을 스님은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실천을 통해 몸소 보여준다.진오 스님은 ‘산에서 염불이나 외워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 혼자 수행하고 행복하게 성불하기보다 어려운 사람과 중생의 행복 및 성불을 도와주는 역할, 즉 보살행이 더 중요하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6년 전부터 달리기에 편리한 마라톤 승복을 만들어 입고 달린다. 스님인데 팔과 다리를 맨살로 드러내다 보니 불교계에서는 튀는 스님으로 보여졌고, “스님이 그렇게까지 할 게 뭐 있나?”라는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선일미 - 달리는 것과 참선은 같은 맛이다
목탁이 아닌 운동화를 통해 지금까지 스님은 1만km를 달리며 약 3억 원을 모금했다. 스님은 실명을 겪으며,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든 심리상태까지 겪었다. 그래서 다친 경험을 통해 주변을 더 둘러보고 장애인 및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과 상처를 나누고, 소통하고자 했다. 마라톤을 위한 훈련과 체력관리도 궁금했다. 스님은 주 6일간 뛴다. 추운 겨울에는 헬스장을 이용하는데, 적어도 매월 1회씩 5~7일간 탁발마라톤을 한다. 먹는 것은 아무래도 야채가 주식이고, 가끔 마라톤을 위한 영양보충을 위해 고기음식과 마라톤 보충제를 먹는다. 스님이 고기를 먹다니! 하지만 사실이다. 어느날 대상포진으로 고생하고, 다리와 입술 등 면역력 약화로 뛰기 어려운 적이 있던 진오 스님을 위해 주변의 스님과 불자들, 같은 운동 동호회원들이 가끔 고기를 챙겨준다.꿈을 이루는 사람들
스님은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대표로 있다. 국내 이주민(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비영리법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과 꿈을 갖고 살잖아요. 그런데 이주민들 중 사고나 인권 피해로 본인은 물론 가족의 꿈까지 무너진 분들이 있어요. 작지만 날개 꺾인 꿈을 도와주기 위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명은 이런 취지에서 나왔다. 이 사단법인에는 이주민상담센터, 외국인쉼터, 가정폭력피해 이주여성 보호시설, 북한이탈주민 자녀 청소년그룹홈, 다문화 달팽이모자원 등 5개 산하기관이 있다. 이런 단체들을 통해 진오 스님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고 각종 재해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 힘든 근로환경과 문화갈등 상담, 타 문화권 친구들과 친목, 365일 24시간 쉼터운영, 의료지원 자립 자활 지원 등 이주민들을 돕는다. 여러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통장은 늘 마이너스다. 그나마 국가유공자인 스님에게 나오는 정기연금이 있어 기본적인 운영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후원과 기부가 필요하다. 사실 마라톤에 심지어 철인3종 경기까지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마라톤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주변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진오 스님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운영하는 모금전문가 학교프로그램에서 모금의 의미를 배웠다. ‘모금은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라고. 스님은 “나는 돈을 모으려고만 했지 사람들 마음을 모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진심으로 달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몸을 헌신하는 만큼 지치고 졸리고 배고프고 춥고 힘들지만 육체적 고통과 밤새 달리다보면 외로움도 커져요. 제일 힘든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는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어요.” 이쯤이면 정말 ‘주선(走禪)’이다. 스님은 매년 국내로 온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나라를 뛰면서 직접 도움을 준다. 후원금과 마라톤 적립금을 통해 스님은 그동안 베트남의 30개 학교와 유치원에 해우소를 지었고 올해는 캄보디아, 내년엔 스리랑카, 내후년에 인도네시아를 계획 중이다. 오는 2월 캄보디아 희망마라톤(앙코르왓에서 프놈펜까지 달리기. 해우소 건립, 학용품, 회충약, 자전거 전달 등을 함께 한다)이 13박 14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한국인 8명(진오 스님, 원지상, 최교윤, 김영록, 김상열, 다카야마, 박영희, 서민호)과 현지인 5명(인솔자 소페악 스님, 통역봉사 2명, 차량기사 1명, 차량보조 1명)이 참가해, 매일 4명이 마라톤을 통해 기금을 적립하고 자전거, 식사 지원과 간식 지원 등의 호라동을 한다. 달리는 스님의 3가지 꿈
진오 스님에게는 3가지 꿈이 있다. 첫째, 작은 절을 지어서 스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국내 이주민의 인권 보호 활동이 정착하도록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후원 회원이 1,080명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는 약 400여 명으로 한 달에 1만 원씩을 후원하고 있다. 셋째, 해외(특히 베트남) 108개 학교에 해우소를 짓는 것이다. 베트남을 집중하는 이유는 베트남 전쟁 때의 민간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4만여 명이나 되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온 까닭에 사돈국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고려 고종 때 베트남유민이 유입되어 화산이씨의 시조가 된 적도 있단다. 진오 스님은 진정한 민간외교사절로 꿋꿋하게 중생을 위해 해외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후천적 장애를 입었지만 스포츠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또 스포츠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쯤이면 장애인스포츠의, 아니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노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진오 스님에게도 후원이 답지했으면 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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