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등 ‘회의중 메모’ 불편 반응
수첩 경계령이 내려졌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ㆍ구속기소)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회의자료를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수사팀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수첩은 56권에 달한다.
특검 내부에서는 “신년운세에 교수가 귀인으로 온다더니 맞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온다. 중국 고대 역사학자 ‘사마천’의 이름을 따서 ‘안마천’으로, 수첩은 ‘종범실록’ 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도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일하며 작성한 200페이지 분량의 ‘비망록’ 역시 검찰 특별수사본부 및 특검 수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된 수첩들 영향으로 경찰 조직을 비롯해 관ㆍ재계에서는 회의를 하면서 받아쓰는 것을 가급적 지양하는 웃지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9일 경찰 고위관계자는 “부서 회의를 할때 일명 ‘교양수첩’ 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회의 좌장의 말씀을 받아적어 왔다”며 “요즘에는 서로 농담삼아 ‘회의 받아 적지마라. 뭘 그런 걸 다 쓰고 그러냐’라고 하는 분위기다”고 했다.
경찰 내부의 이런 분위기는 최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인사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박건찬 전 경찰청 경비국장 수첩도 한몫했다. 박 전 국장은 2014년 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청와대 경호실 경찰관리관(경무관)으로 재직했다. 박 전 국장이 당시 작성한 업무수첩 11개쪽에는 경찰 인사에 개입한 정황으로 보이는 메모들이 발견됐다. 이들 중에는 치안정감과 치안감, 경무관 등 현역 고위 간부도 다수 포함됐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수첩 경계령은 기업들에도 내려졌다. 모 대기업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회의할 때 요즘에는 수첩 대신 A4 용지 같은 종이 낱장을 들고 들어가서 간략하게 메모정도만 하는 분위기다”고 했다. 수첩에 연속적으로 메모가 작성돼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가 빚어낸 풍경이 씁쓸하다.
김진원 기자/jin1@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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