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여부는 도박·책임론 ‘덫’만 정부·산은·채권자 ‘속내’ 일치 ‘손실’ 감당하더라도 ‘면책’ 우선 결국 국민·직원들만 기망 당해

채무조정 합의를 전제로 추진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끝내 첫 고비도 넘기치 못한 채 사실상 법정관리로 결말을 맺게 됐다. 지난달 23일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발표한 대우조선 자율구조조정 방안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과의 지리한 명분싸움만 거듭하다 3주간의 시간만 잡아먹은 꼴이 됐다. 정부도, 은행도, 국민연금도 설령 금전적 손실을 보더라도 법적 도적적 ’책임‘을 피하는 데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를 둔 상황이 치명적이었다.

▶3주간 3번 만난 산은-국민연금…입장 일방적 전달로 일관=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의 양 당사자인 산은과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이후 단 3차례 만났다. 하지만 사실상 자율적 구조조정 무산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쌓기 수준에 그쳤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공식적인 첫 만남은 지난달 30일 산은이 수출입은행, 대우조선, 회계ㆍ법무법인과 함께 국민연금을 찾아 채무 재조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자리로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 9일 두번째 만남에서 국민연금은 산은을 찾아 ▷회사채의 일부 상환 또는 산은의 상환 보증 ▷대주주인 산은의 추가 감자 ▷ 출자전환 비율과 전환가액 조정 등 수정안을 요구했다.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와 명분이 없는 한 회생이 불투명한 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산은 역시 지지 않았다. 지난 10일 산은 여의도 본점에서 대우조선 회사채 보유 기관투자가 32곳을 상대로 한 채무조정안 설명회에서 산은은 국민연금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회사채 50%를 3년간 상환 유예해 주면 만기 때 우선상환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구두’로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문서화’를 피하기 위해서다.

국민연금이 오는 17~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것은 99% 확실하다. 사채권자 집회 이후 대우조선은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모두 속내는 ‘법정관리가 편하다‘=당초 금융위와 산은은 자율적 구조조정이 법정관리보다 채권단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는 대우조선이 회생한다는 전제가 충족될 때다.

국민연금과 민간채권자들은 법정관리에 따른 즉각적인 채권 손실이나, 자율적 구조조정 이후 회수금액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지금 지원하고도 3년 뒤 대우조선이 회생하지 못하면 지원결정에 따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법정관리에 넣어서 향후 대우조선이 회생한다면 손실처리한 부분이 환입될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실제 지난 10일 영국 조선ㆍ해운 시황분석 기관 클락슨은 ‘선박 발주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8년 연간 발주량을 2050만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감안한 표준 화물선 환산 t수)로 작년 9월 전망치(2560만)보다 510만CGT를 하향 조정했다. 6개월 사이 내년 전망치를 20% 낮춘 것.

산은과 수은 역시 마찬가지다. 법정관리로 가면 회생책임은 원칙적으로 법원 몫이다. 추가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 실제 산은의 채권 회수율은 자율적 구조조정시 81.1%에서 법정관리시 66.2%로 줄어들지만, 그 감소폭이 사채권자(50%→10%) 보다 적다.

대규모 감자 등 채무 재조정을 통해 대우조선의 몸집을 가볍게 한 후 신규자금을 투입해 지분율을 높인 뒤 향후 정상화를 거쳐 재매각을 달성하면 채권 회수 측면에서 보다 나을 수도 있다. 자율구조조정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에 나올 수 있는 ‘책임론’에서도 비껴갈 수 있다.

한때 주도적으로 나섰던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한발 빼는 모습니다. 대선 국면으로 사실상 공직자들의 권한행사가 ‘최소한’으로 위축되면서 임 위원장의 입지도 크게 좁아졌다는 평가다. 정부나 금융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국책은행들이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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