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슈섹션] 37년 전 벌어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신군부의 충돌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당시 시민들은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했다.

같은 달 27일까지 벌어진 민주화 운동에 대해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은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오도했다. 북한 배후설을 주장하며, 무력 진압을 정당화 시켰다. 또한 지역 언론 등에도 보도 압력을 가했다. 당시 지역 매체들도 사태의 진상에 대해 다룰 수 없었다.

전남매일신문은 같은달 20일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라고 임직원 일동 명으로 이같은 사고를 내놨다.

사태의 전말은 십수년이 흘러서야 들어서야 드러났다. 명칭도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게 됐다. 문민정부 시절 정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확인된 사망자는 193명인데 이 중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이다. 부상은 852명이었다.

그러나 유족회 등 시민단체의 주장은 다르다. 열흘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160여 명이고, 부상자는 5000명에 육박한다. 암매장되거나 실종된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편 5·18 광주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9년만에 5월의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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