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가정 소년범 위한 ‘사법형 그룹홈’설립…강연료와 지인들 도움으로 7년째 운영…재판중 야단 치는것으로 유명한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소년범 대부’로 알려진 천종호(52·사법연수원 26기)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5만원 짜리 낡은 구두를 10년째 신고 있다. 사용하는 전화기도 개통한지 4년이 된 구형이다. 평소 입는 티셔츠도 만원 대에서 고른다. 대신 지갑에는 언제든 아이들에게 쥐어줄 수 있는 문화상품권을 꽂아둔다.

‘공직생활을 하다 나중엔 변호사 개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서른 두 살 초임 판사는 어느새 비행청소년 전담 판사로 유명해졌다. 개업을 고려했다면 벌써 민·형사 재판부를 거쳤겠지만, 그는 자원해서 아이들 곁에 남았다.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을까. 지난 22일 부산에서 그를 만났다.

“고아원 직원은 낮에만 상주하잖아요. 그런데 낮엔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어요. 정작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학교 다녀온 저녁시간 ‘아버지’, ‘어머니’ 불렀을 때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천종호 부장판사는 ‘호통 판사’ 혹은 ‘소년범 대부’로 불릴만큼 청소년 관련 기관과 단체 사람들에게 유명 인물이다. 천 부장판사가 설립한 결손가정 소년범의 위탁가정인 ‘사법형 그룹홈’을 거친 비행청소년은 600명이 넘는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호통 판사’ 혹은 ‘소년범 대부’로 불릴만큼 청소년 관련 기관과 단체 사람들에게 유명 인물이다. 천 부장판사가 설립한 결손가정 소년범의 위탁가정인 ‘사법형 그룹홈’을 거친 비행청소년은 600명이 넘는다.

천 부장판사는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사법형 그룹홈(청소년 회복센터)’ 이야기부터 꺼냈다. 2010년 2월 그가 창원지법 소년부 재판을 담당할때 아이디어를 내 만든 청소년 시설이다. 결손ㆍ저소득층 가정 출신 비행청소년들이 열악한 가정환경 때문에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일종의 대안가정을 만든 것이다.

국내에서 매년 생기는 소년범 수는 7만 여명에 달한다. 그 중 무거운 죄를 저질러 교도소나 소년원으로 가는 인원은 5000명 안팎에 불과하고, 대부분 보호처분 등 가벼운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다. 하지만 나쁜 환경때문에 다시 범죄 유혹에 노출된다.

천 부장판사는 이런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직접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제대로 된 가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법원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비행소년 한 사람에 월 50만원을 지원하는 것과 천 부장판사가 출간한 책의 인세 6000여 만원, 그리고 후원금으로 마련한 돈을 운영 자금으로 조달했다.

그렇게 2010년 창원을 시작으로 경남 6곳, 부산 6곳, 충남 2곳 등 전국적으로 모두 18곳의 사법형 그룹홈이 설립됐다. 현재까지 이 대안가정을 거친 청소년 수는 600여명이나 된다. 현재 150여명의 보호청소년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제대로 된 가정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여기선 실제 부부가 아이들을 돌봐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사춘기 때 겪는 고민을 들어주죠.”

부모 역할을 할 봉사자들을 모으는 건 그래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일손이 아쉽다고 아무에게나 부모역할을 하라고 맡길 수 없어서다. 천 부장판사가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언론에라도 한 번씩 나오면 뜻이 있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드문 드문 법원 사무실로 연락한다.

“몇 년 전에 일본 오사카 변호사회에서 강연 요청이 있어서 나갔다가 현지 아동자립시설을 가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우리는 그룹홈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데, 거기는 4만평(약 13만2000㎡) 부지에 12개 가정집을 지어서 같이 지내는 거에요. 직원이 있고, 안에 학교도 있어요. 밥도 식당에서 미리 해놓으면 가져다가 집에서 먹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분들의 수고가 훨씬 덜하죠.”

천 부장판사가 찾았던 곳은 일본 오사카의 ‘슈토쿠(修德) 학원’ 이다. 일본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지원한다. 한 아이당 지원 금액도 연간 7600여만 원에 달한다. 사법부 예산을 쪼개 연 600만 원을 지원하는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출산 장려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소년원이나 고아원에 간 애들은 거기서 돌본다지만, 그보다 가벼운 비행을 저지른 애들은 국가가 보호관찰하는 거 말곤 신경을 전혀 쓰고 있지 않아요.”

대안 가정으로써 사법형 그룹홈 확대가 필요한데, 정작 청소년 비행사건이 가장 많은 수도권엔 진입조차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여럿 모아놓고 키울 집이 필요한데, 지방에 비해 턱없이 높은 주거비용이 가장 큰 진입장벽이다. 그나마 지난해 국회에서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향후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건 다행이다.

‘판사 천종호’의 종착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너털 웃음과 함께 “나도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다만 정치인이 되거나 고위직 공무원으로 출세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제 형제들은 다들 가난합니다. 제가 판사가 된 다음 부탁한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한테 손내밀지 마라 못 도와준다’, ‘사건 청탁하지 마라’. 명예롭게 퇴직하고 변호사가 되면 그 때 도와주려고 잠깐 보류해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온것도 그렇습니다.

창원에서 소년재판을 하게 됐는데, 가난하게 자란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어요. ‘아무 생각 없이 2년만 열심히 하자’, 이랬는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일 저지르고 발 빼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1년 더 있었죠. 그러다보니 저질러놓은 일도 있고, 지명도도 높아지고. 어느 새 제가 아이들 처우 개선하는 데 앞장서는 위치에 있게 됐죠. 일단은 정년퇴직까진 이 일을 할 생각입니다.”

천 판사가 소년재판에 전념한 지도 벌써 8년 째다. 자신에게 감사를 표현한 아이 중 어른이 된 아이들도 꽤 있는데, 천 부장판사는 굳이 따로 연락하지 않는다. 소년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혹시 살아가는 데 지장을 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천 부장판사는 그룹홈을 마냥 남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 직접 아이들과 생활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소년 재판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주 호통을 쳐 ‘호통 판사’로도 알려졌지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대화가 부담스러우면 안되니까요. 일단 재판이 끝났으면 평범한 아이들이 되는 거잖아요. 집도 없이 거기 머무르는 것 자체가 사실상 벌을 받는 겁니다. 그저 만나면 ‘니 뭐 잘하노. 함 해봐라’ 이런 식으로 자꾸 의욕을 북돋아줘야죠.”

얼마 전에는 ‘하나투어’ 덕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동남아시아 여행도 다녀왔다. “저도 2006년에 일본에 장기 해외연수 갔다온 거 말곤 외국 나가본 경험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일 하고 나서 감사한 게 아이들 덕분에 동남아 일대를 돌고 있어요. 따로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언론 기사 보고 여행사 팀장 한 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수학여행 한 번도 못가본 애들 데리고 한 번 다녀오시라’는 제안에 얼떨결에 다녀온 여행이지만, 아이들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둘러보면서 깨닫는 바도 많고, 위축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직원 한명의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하나투어가 회사 차원에서 후원하고 있다.

천 부장판사는 후원이 필요하지만 공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함부로 돈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강연 요청이 오면 마다하지 않고 나선다. 강연을 듣고 ‘작은 도움이라고 주고 싶다’고 나서는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산 지역 농축산 마트를 운영하는 분이 식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줘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주위에서도 도움을 준다. 천 부장판사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선배들이 5000만원을 출연해 만든 사단법인 ‘만사소년’은 규모를 떠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천 부장판사는 “지방법원이 있는 지역마다 가정법원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인천 등 6곳에 불과한 가정법원이 늘어나면 아이들이 이사를 하지 않고 계속 같은 지역에서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가정법원이 개원한 지 50년이 넘었어요. 부산가정법원은 2011년에 생겼죠. 저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부산 애를 대전에 보내면 어떻겠어요. 아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건 나무를 옮겨심는 것과 같거든요.”

천 부장판사는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시절 도움을 준 친구 얘기를 종종 꺼낸다. 졸업 무렵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서로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던 친구가 우연히 사정을 알고 사비를 털어 대학 원서를 사주고, 학교 직인도 받아줘 마감 20분 전에 원서를 접수했다. ‘누군가 다가와 도와주려고 하면 그걸 잡으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천 부장판사는 스스로도 ‘주어진 노력하다 보면 다른 도움의 손길이 또 나타난다’고 믿는다.

부산=좌영길·이유정 기자/, 사진=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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