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은 인정하지만, 기업쪽 이해가 얼마나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최근 기자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새정부 들어 ‘경제계 맏형’ 역할에 불철주야 중인 대한상공회의소에 실망한 속내를 완곡히 내비친 것이다. 경제계를 대표해 경제부처 수장들을 만나면서 대한상의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부와의 소통의 결과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경제계 일각에선 “정부측에 내주기만 하고 받아오는 것은 없다”라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 좀 더 거칠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대한상의가 정부의 ‘고충 처리반’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해를 대변해야할 단체가 정부 정책을 ‘군말 없이’ 따르며 기업들의 고충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주요 부처 장관들은 대한상의와의 간담회를 통해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경제부처 수장들과의 첫 만남이 모두 대한상의를 통해 진행됐다. 청와대 역시 주요 경제현안과 일정을 대한상의와 조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미국 방문과 15개 기업 총수와의 만남 등을 전부 대한상의를 통해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메시지가 전달되는 창구로만 역할했을 뿐 기업의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이 수렴되는 자리로는 별로 작동하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백운규 산업통장자원부 장관과 상의회장단이 가진 조찬간담회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백 장관은 “경제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해 달라”며 추켜세운 뒤, “대한상의가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대한상의가 수시로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해주는 한편 정부와 호흡하고 같이 노력해달라”며 “산업부와 상의 간에 지속가능하고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민관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상의회장단의 응답은 “정부와 경제계가 원팀이 돼 상생과 혁신성장을 책임지며 상시적 팀플레이를 펼치자”였다.
이날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통상임금 판결 등 기업의 부담이 급증하는 환경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이뤄졌을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사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호응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최저임금을 대폭 상향하는데 합의하고 하반기 신규 채용을 확대하는 등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경제정책에 적극 화답했다.
대기업별로 2차, 3차 하청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인 동반성장에도 앞다퉈 나서는 모습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화답은 오히려 기업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년 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인세를 올린 나라는 그리스 등 재정위기를 겪은 6개국 뿐이고 19개국이 내렸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을 향한 제재 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중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른바 “재벌개혁은 몰아치듯 할 수 없다”며 ‘속도조절론’을 거론했지만, 정적 공정위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풀리지 않는 사드 문제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가중시키며 유통업체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내 경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는 고사하고 몸을 움추릴수 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날인 5일 오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만나 주목을 받았다.
이 만남은 통상임금,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문제 등 기업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주무부처의 장과 새 정부 들어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를 이끄는 민간인과의 첫 대면식이어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15분 정도 이어진 만남에서 박 회장은 ‘정책적 균형’과 ‘현실적인 대안’을 강조했다. 박 회장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언급한 것을 두고 재계에선 일말의 기대감을 갖는 모습이다.
사실상 일방통행으로 진행된 정부와 재계 단체의 만남의 모습이 변화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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