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부당 개입 -박근혜 지시 인지한 걸로 판단…첫 언급 -法 “국민연금, 정치적 목적 이용 안돼” 지적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줄곧 국민연금공단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문 전 장관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14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이재영)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문 전 장관에게 1심과 같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 중 일부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특정 기업의 합병 성사를 위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하고, 연금 관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실추시켜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문 전 장관이 ‘합병안을 잘 챙겨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인지한 걸로 보인다”고 언급해 이 사건 재판에서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문 전 장관 측은 그동안 항소심에서 “1심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며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범행 동기도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등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관계자들이 검찰과 법원에 나와 진술한 내용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줬다.

최 전 수석은 “2015년 6월말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챙겨보라는 지시를 받고 행정관에게 상황 파악을 지시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진수 전 보건복지비서관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합병안 성사를 적극 챙겼고, 문 전 장관은 안 전 수석의 자문에 따라 업무처리를 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또 “안 전 수석 또는 최 전 수석이 문 전 장관에게 대통령 지시라며 합병안이 성사되도록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이 ‘삼성 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한 사실을 문 전 장관은 적어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앞서 문 전 장관은 2015년 외부 인사로 구성된 국민연금의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할 것을 우려해 내부 인사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안건을 다루도록 압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장관은 항소심에서 “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의 주체로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감독과 지시 권한이 있다”며 직권남용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독립성 침해라는 점을 알면서도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보건복지부 공무원들과 합병안 처리방안을 논의했다”며 “국민연금에 대한 지도ㆍ감독권을 남용했다”고 봤다.

보건복지부가 ‘삼성 합병안’ 외에는 기금운용본부의 안건 부의에 관여한 적이 없는 점, 복지부 공무원들이 문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투자위원회에 합병안 찬성을 반복 요구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문 전 장관이 지난해 11월30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전술적인 투자 결정에 장관은 관여하지 않고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도 허위 증언으로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전문위원회의 개최를 방해한 부분 등 특검이 주장한 일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홍 전 본부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홍 전 본부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합병안 찬성으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1심과 같이 징역 2년6개월을 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홍 전 본부장은 합병안을 당초 전문위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복지부가 압박하자 투자위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이 일부 투자위 위원들에게 찬성을 권유하고, 조작된 합병 시너지 수치로 찬성을 유도했다”며 “이로 인해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산상 이득을 취하게 하고, 국민연금공단에 손해를 가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과 마찬가지로 이 전 부회장의 이득액과 국민연금의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어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은 연금의 재원이므로 재정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연금 가입자의 이익과 무관한 정치목적이나 이익집단의 이익 추구에 이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