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벼랑 끝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정세가 2018년 새해가 되자마자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바뀌고 있다. 작년에도 서울을 겨냥한 불벼락ㆍ불바다 위협을 늘어놓던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을 ‘동족의 경사’라며 같이 기뻐하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 때마다 지대지ㆍ공대지미사일 대응사격으로 응수하던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국면전환 움직임이 보이자마자 고위급 당국회담을 공식 제안하며 호응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2일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을 ‘북측’, 김정은을 ‘김정은 위원장’으로 호칭한 것은 이전엔 찾아보기 어려운, 작지만 미묘한 변화다.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큰 틀에서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 것으로 보여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남북회담이 조만간 성사될 전망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한반도를 지배하던 도발과 위협, 화염과 분노라는 섬뜩한 단어들이 대화와 화해라는 희망적인 단어들로 급속히 대체되리란 기대감도 높아진다. 이 같은 변화의 출발점에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관계개선에 나서자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자고 밝혔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해선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선수단 파견을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위해 당국이 만날 수 있다며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 해빙의 물꼬를 사실상 먼저 텄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비록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평화공세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파격적이고 과감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중요한 통치수단이자 국가정책의 수립방향을 제시하는 통치이데올로기 구현 수단으로 작동돼왔다. 매년 신년사 발표 이후 북한 전역에선 각 직장과 인민반, 그리고 각급 생산단위별로 학습과 지지궐기대회, 해설모임 등이 열리고 최고지도자가 제시한 목표와 정책 관철을 다짐한다.

북한이 올 한해 남북관계에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되는 까닭이다.

문제는 신년사는 신년사일 뿐이라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5년 신년사에선 ‘최고위급 회담’을 언급하며 남북정상회담까지 시사하고 2016년 신년사에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해결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올해 신년사 곳곳에도 적잖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모든 핵전쟁 연습과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언급하며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이 문제를 연계시킬 것임을 예고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정권 창건 70주년을 같은 반열로 취급했는데, 정권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남측 축하단 내지 대표단 파견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 훼손과 남남갈등 유발이란 적잖은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김 위원장은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을 내세우면서 핵문제에서는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모처럼 조성된 기회를 살리면서도 거시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와 북핵문제를 풀 수 있는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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