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외국인 방송인’ 시대의 개막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로버트 할리를 시작으로 방송 2회 만에 화제의 중심에 선 ‘비정상회담’(JTBC)의 훈남 외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들은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에게 자꾸만 빠져든다.

방송에서 외국인을 소화하는 방식은 우리 문화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외국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유창한 한국어에 더해진 반전 예능감(로버트 할리)에 열광했고, “한국 좋아요”를 말하는 외국인(‘미녀들의 수다’)을 바라보며 진한 자긍심을 갖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한국에 거주하는 다국적 외국인(‘비정상회담’)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포용력도 보여주고 있다. 그 때마다 인기스타들이 탄생했다. ‘외국인 예능’에 등장했던 인기스타들의 계보를 살펴봤다.

▶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1990년대 말, 로버트 할리의 등장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파란 눈의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가 그랬다. 한국어 실력 못지 않게 언변도 화려했으나, 예능적인 면모가 더 비쳤던 터라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걸 시청자는 종종 잊었다. 희대의 유행어가 남았다. “한 뚝배기 하실래예.” 그리고 그는 한국인이 됐다.

▶ “울랄라” 우아한 파리지앵의 반전매력=우아한 파리지앵 외모와는 어울리지 이다도시의 “울랄라”는 로버트 할리의 사투리와 함께 반전매력의 대명사였다. 심지어 다소 푼수같다 여겨지는 흥분된 말투는 그 시절 낯선 프랑스인을 친숙하게 만들어줬다.

▶ 사유리 발굴한 ‘미녀들의 수다’=2006년 첫 방송된 KBS2 ‘미녀들의 수다’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과 함께 하는 토크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았다. 미국 일본 중국 남아공 등 다양한 국가의 미녀들이 등장해 한국 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한국 완전 좋아요”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난히 인기 높았던 주인공 중엔 일본 출신 사가와 준코, 중국 손요, 은동령, 우즈베키스탄의 자밀라 압둘레바, 구잘 사이다흐마도브나 투르수노바, 이탈리아의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영국의 에바 사치코 포피엘, 핀란드의 따루 살미넨, 러시아의 라리사, 파라과이 아비가일 아이노암 알데레테 칸시안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의 사유리는 ‘미수다’ 이후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4차원 매력을 발산 중이다. 아비가일 또한 예능에서, 라리사는 연극 무대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호주형’ 샘 해밍턴=그는 정녕 호주인일까? ‘개그콘서트’로 출발한 호주 출신 개그맨 샘 해밍턴은 어리바리한 구멍병사(‘진짜사나이’)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이후 ‘마녀사냥’ ‘섬마을쌤’을 통해 예능을 섭렵했다. ‘로버트 할리’ 시절의 인기를 뛰어넘은 명실상부 연예인. 샘 해밍턴에겐 특장점이 있다. 한국인 못지 않게 한국문화에 푹 젖어들었다는 점, 그를 바탕으로 놀라운 언어구사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고려대학교 어학당 출신 샘 해밍턴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우리만의 은어가 속속 숨어있다. 이를테면 ‘원샷’, ‘길보드’, ‘낚였다’ 등등. 허지웅의 ‘간첩설’ 주장은 이 때문에 나왔다.

▶ ‘프랑스 청년’ 파비앙=지난해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실속있는 한국 생활기를 공개하며 주목받았다. 꽃미모로 쌈장 비빔밥을 쓱싹 비우고, 찜질방을 즐기는 데다, 때수건으로 박박 때를 민다. 한국까지 와서 너무도 한국사람 같은 궁상맞은 싱글라이프를 살지만, 그게 인기를 얻어 드라마에도 진출했다.

▶‘비정상회담’ 11명의 다국적 미남=다국적 미남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tvN ‘섬마을 쌤’에서 김을 좋아하는 마음 여린 가나 청년으로 등장했던 샘 오취리를 비롯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케밥봉사를 나갔던 에네스 카야를 포함한 11명이다. 다국적 미남들은 한국의 문화를 찬양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놓고 자신들을 성장시킨 고국의 문화를 토양 삼아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통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 판을 만들어놓은 예능인 셈이다. 가장 진화한 차원의 외국인 방송인 소비 방식이었다. 아쉬운 건 단 2회 만에 여자게스트 위주로 판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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