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다툼 2차피해 노출 불가피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잇따르면서 검찰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피해자의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다.
3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성폭력 고소 사건에 대한 무고 수사시 성폭력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때까지 수사를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아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다. 대검은 또 성폭력 피해사실 공개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형법 제310조에 규정된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용하는 여부를 검토하도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공익적 목적이 커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개정은 무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되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법무부의 권고가 나오면서 추진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2차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진촬영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인기 유튜버 양예원(24) 씨는 30일 가해자로 지목된 스튜디오 실장 A(42) 씨에 의해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 당했다. 앞서 양씨는 지난 16일 “2015년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A 씨의 스튜디오를 찾았다가 강제로 노출 사진을 찍고 20여명의 사진 작가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다음날 A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대검의 성폭력 수사 매뉴얼에 따라 A 씨가 양 씨를 상대로 낸 무고죄 고소 사건은 당분간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까지 적용하더라도 2차 피해는 여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법제연구원 관계자는 “형법 제 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 활용하면 된다는 주장은 일단 고소가 받아들여진 후 법정에서 다투어지게 되어 피해자가 지난한 소송과정을 겪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폐지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 성폭력 피해자를 역고소 등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폭로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도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공연한 적시로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성은 인정된다는 점, 미국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형벌에 대한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는 유효ㆍ적절한 수단이 마땅치 않은 우리나라의 법 현실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을 폐지할 경우 그 폐단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현정 기자/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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