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3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타진됐다.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상하이에서 비밀접촉,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일제강정기 때 독립투사들은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한중수교 직후 중국 내 첫 지방영사관도 상하이에서 개설됐다. 상하이는 중국 최대 정치파벌인 상하이방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주상하이총영사는 상하이 교민안전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상하이 당서기ㆍ시장 등 중국 요인들과 우리 정부인사들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한중관계를 관리하는 실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주상하이총영사직은 캠프 출신 공신들이 차지하는 자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난 20일 박선원 주상하이 총영사는 임명 6개월여 만에 사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박 전 총영사는 통상 2~3년인 재외공관장 임기를 채우지 않고 이례적으로 의원면직됐다. 박 전 총영사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보좌관이 될 예정이다.
▶코드인사와 반복되는 인사이동, 외교관계 구축에 좋지 않아= 과거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사례를 고려하면 박 전 총영사의 이례적인 인사이동은 중국에 대한 중차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상 임기를 깨고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을 하는 주재국 입장에서 불편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하이는 중국의 핵심 정치파벌의 근거지 중 하나다. 중국이 외교적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만든 다자협력안보 협력기구의 근거지 또한 상하이다. 상하이 내 우리 교민들 입장에서도 총영사의 잦은 인사이동은 교민안전 및 권익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체감하기 어렵게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3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아쉬움을 남긴다. 김 대변인은 당시 기자들에게 박 전 총영사의 인사이동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중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표현이 있는데, 대사는 주재국의 아그레망(사전동의 절차)도 받고 직접적인 외교관계를 하지만, 총영사는 우리 교민들을 관리하고, 주재국에 대한 예의 차원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중국은 총영사도 아그레망와 비슷한 인가절차가 필요하다. 중국의 까다로운 외교절차 때문이다. 또, 대사직이 아닌 총영사 자리라 할지라도 엄연히 주재국 지방정부와 외교업무도 수행한다. 따라서 “총영사직을 필요에 따라 아무때나 바꿔도 된다”는 식의 발언은 주재국 지방정부와 외교관계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외교의 틀이 아닌 정치역학관계의 틀에서 재외공관 인사를 바라보면 상대국의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물론, 외교결례라고 할지라도 국가이익이 되는 선택이라면 정부는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박 전 총영사의 인사이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김 대변인은 전날 “지금 비핵화 문제, 북미회담이 중차대한 국면에서 박선원 총영사를 필요로 했다”며 “(노무현 정권 시절) 6자회담과 핵문제가 교착에 빠질 때마다 박선원 당시 비서관이 능력을 발휘한 경험이 있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꾀주머니’란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박 전 총영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과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함께 비밀 남북정상회담 준비팀인 ‘안골모임’의 실무를 맡기도 했다.
다만 상대방이 엄연히 있는 외교의 현장에서 ‘결례가 아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북미대화 국면에서 주한미국대사로 당초 주호주 미국대사에 내정됐던 해리 해리스 전 아시아태평양사령관을 발탁했다. 이는 더 큰 외교결례였다. 미 국무부는 이와 관련해 호주 정부에 양해를 구했음을 밝혔다.
▶상하이총영사직, MB정부 이후 캠프인사들이 독차지= 필요에 따라 단기에 영사직을 이동시켜도 된다는 인식이 누적되면 자국중심의 외교의전과 절차를 중시하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지난 20년 간 중국이 외교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사이 우리나라의 대중국 외교는 제자리 걸음을 해왔다. 중국의 외교환경 및 인식를 통찰하지 못한 탓이다. 대중외교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지는 역대 ‘상하이 총영사직’의 인사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박 전 총영사의 임명 당시 정부는 “국제정치, 동북아 분야에 밝은 적임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총영사는 과거 대중외교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다. 과거 외교부에 소속돼 있지도 않았다. 박 전 총영사가 총영사에 임명되기 전 이력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안보상황단을 이끌던 서훈 현 국가정보원장 아래서 부단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교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박 전 총영사의 인사가 ‘코드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선캠프 출신이 상하이총영사에 임명되는 코드인사는 비단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상하이총영사관의 코드화는 이명박 정부때부터 이뤄졌다. 당시 민간 기업인 김양 씨가 상하이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라는 이유로 상하이총영사에 임명됐다. 이후 MB캠프에 있던 영어강사 김정기 씨가 발탁됐다. 사상 최악의 외교참사인 ‘상하이 스캔들’이 발생했을 당시 김정기 총영사는 사건을 일으킨 경제영사와 법무영사 간 감정싸움을 저지하지 못하고 아둥바둥하면서 결국 경질됐다. 뒤늦게 외교관인 안총기 전 총영사(전 외교부 2차관)가 급파돼 사태를 수습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상하이총영사 자리는 코드인사가 장악했다. 박근혜 캠프에 있었던 구상찬 전 의원이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그러나 구 전 총영사는 임기 2년을 채우지 않은 채 “20대 총선을 준비한다”며 서울로 귀국했다. 구 전 총영사의 후임엔 박근혜 캠프의 대선용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소속의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발탁됐다. 그러나 한 전 총영사는 교민안전 보호 및 민원처리에 소홀히 했다. 특히 중국에서 활동 중인 사업가가 현지인에게 위협을 받아 영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자 “내가 경비원도 아니고”라고 말해 교민사회가 분노했다. 이에 한 전 총영사는 공개사과를 해야 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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