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방식 공모로 대손충당금 부담 업계, 공시의무 완화 ‘QIB제도’ 제안 장기 우량채권 공급기반 마련 시급 국내 채권 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원화의 지위를 국제결제통화로 격상하기 위해 도입한 아리랑본드의 연간 발행규모가 도입 20년이 넘도록 2000억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리랑본드 발행시장이 커질수록 주요 투자자인 보험사들이 고객들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증권사 역시 주관 수수료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규제가 아리랑본드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관련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된 아리랑본드 규모는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 200억원과 노무라인터내셔널펀딩 1800억원 등 총 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발행된 회사채(144조238억원)의 0.2%도 채 안 되는 규모이다. 또 2015년(2100억원), 2016년(2950억원) 보다도 발행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아리랑본드는 미국의 양키본드, 일본의 사무라이본드 처럼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원화로 발행하는 채권을 일컫는 용어다.
한국의 저금리 기조가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가 보다 높은 국가의 기업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발행할 때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 발행이 주로 이뤄지고 환율이 상승하면 상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환 변동폭을 축소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외환 관리에도 유리하다.
증권업계도 아리랑본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증권사는 외국기업의 아리랑본드 발행을 주관하면서 권면총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를 받는 만큼, 시장이 커지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 원화 회사채권 발행시 수수료율은 20bp(1bp=0.01%포인트) 수준인데, 아리랑본드의 경우 50bp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며 “수수료 외에도 다른 제반비용도 받는 만큼 원화채권보다 수익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해외채권 인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해외 진출 역량도 쌓을 수 있다.
많은 이점과 업계의 관심에도 불구, 아리랑본드 발행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투자자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이 발행한 국내채권에 대한 수요는 주로 보험업권에서 형성된다.
고객들의 노후자금을 보험금 지급개시일까지 장기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발행한 초우량장기채가 적합한 투자자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 기업들이 아리랑본드를 공모로 발행할 때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각종 투자위험을 한글로 공시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대부분 사모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수요층인 보험사들은 지급여력비율(RBC) 규제상 사모채권을 매입하면 대출로 집계돼 이에 따른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어 투자를 꺼린다.
금융투자업계는 아리랑본드에 대한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도구가 이미 마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위험 관리능력이 있는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만 증권이 매매될 경우, 해당 증권을 발행한 기업에 대한 공시의무를 완화한 적격기관투자자(QIB) 제도가 그것이다. 외국 기업도 간소화된 영문 공시서류를 제출하면 사모로 발행한 채권을 금융투자협회에 QIB채권으로 등록할 수 있다. 업계는 QIB 제도 아래 유통되는 사모 아리랑본드는 일정부분 투자위험이 제거된 자산인 만큼, 보험사가 이를 인수했을 때 ‘대출’이 아니라 ‘유가증권’으로 감독당국이 인정한다면 아리랑본드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확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사모채권을 대출이 아닌 유가증권으로 인식할 만큼 투자 위험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활성시장(일정 가격정보가 공유되는 시장)이 있는 채권만 유가증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QIB 시장의 경우 기업이나 투자자 모두 부족해 활성시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들의 검증을 거치는 일반 회사채 시장과 달리, QIB 시장은 투자자들 간의 거래도 활발하지 않고 평가 인프라도 부족해 투자 위험이 낮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QIB가 채권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제도 안착을 위한 선제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준(準)공모 방식으로 발행된 채권을 사모채와 같은 위험도로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감독당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국내 증권사들이 홍콩에서 발행된 부실 유동화자산을 인수해 문제가 된 바 있는데,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원호연ㆍ최준선 기자/why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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