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표적인 갈등 중재자다. 그런데 때로는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상가 임대차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딜레마를 겪고 있다. 개인 소유 상가에서는 건물주와 임차상인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면서, 공공재산인 상가에서는 건물주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어서다.
상가 임대차에서는 건물주에게 주는 임대료와 별도로 임차인들끼리 ‘자릿세’를 주고받는다. 권리금이다. 떠나는 임차인이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받는 식으로 거래된다. 후속 임차인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건물주는 고의로 후속 임차인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권리금 거래를 막은 다음, 새 임차인을 들일 때 임대료를 올려받기도 한다. 소위 ‘권리금 약탈’이라 불리는 건물주의 ‘갑질’로 지적된다. 서울 서촌의 ‘궁중족발’ 등 최근 사회적으로 상가 임대차 갈등이 크게 불거졌던 사건들 대부분이 이 경우다.
이 때문에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이하 상임법)이 개정되며 권리금이 법적 개념으로 인정(10조의3)받았고, 보호대상에도 포함(10조의4)됐다. 임차인끼리 권리금을 주고받는 것을 건물주가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동시에 개정법(10조의5)은 국ㆍ공유재산을 이러한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시는 시(市) 소유 지하도상가의 권리금 거래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했다. 서울 내 지하도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개발한 후 일정 기간 운영하고 시에 기부채납한 공유재산이다. 시는 그간 조례를 통해 지하상가 임차권 양도ㆍ양수를 허용해왔는데, 이를 전면 금지한 것이다.
상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많게는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입점해 리모델링 등 시설에 투자했는데 양도가 불가능해지면 이를 회수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서울 지하상가는 총 2700여개 점포다. 인천, 대전 등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전대(轉貸)를 허용해온 일부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
서울시는 ‘법대로’를 강조한다. 현행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은 공유재산을 양도ㆍ양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감사원 지적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ㆍ공유재산이 사유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전대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입찰을 통해 공정하게 기회가 분배돼야 한다”며 “지하상가만 전대를 허용해 줄 경우 다른 국ㆍ공유재산과의 형평성도 문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같은 경우도 시세보다 싼 가격에 임대를 주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웃돈과 함께 전대가 이뤄지곤 하는데,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단속대상이다.
법대로면 서울시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임차인 권리를 더 강화하는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줄줄이 폐업 위기에 몰려 아우성치는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서다. 최근에도 정부는 “백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할 수 있는 가게를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2015년 법 개정 이후 ‘상임법 10조의 5’를 삭제해 지하상가와 같은 국ㆍ공유재산 상인도 권리금을 보호해주자는 지적이 꾸준하다. 2016년엔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점포를 공개입찰하는 서울 지하철상가(1~8호선 1905개)의 공실률은 10.2%다. 5년 기준 최대 입찰가가 15억9000만원인 강남역 상가의 공실률은 14.3%에 달한다. 결국 지하상가라고 특히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다. 상인들이 상권 형성에 대한 기여도가 상당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하상가의 권리금 문제를 ‘법대로’ 금지하더라도 ‘임차인 보호’라는 가치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권리금을 일시에 금지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권리금을 내고 들어온 상인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거친 해결 방법”이라며 “임차료를 일정 부분 인하하는 등의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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