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아이재롱 못보여줘 죄송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고속도로 휴게소, 만남의 장에서 만난 고태협 경장.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고속도로 휴게소, 만남의 장에서 만난 고태협 경장.

민족 최대 명절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고향 방문이 언감생심인 사람들이 있다.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을 임무로 한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경찰들이다. 그들을 버티게 했던 것은 ‘자부심’이었다.

지난달 28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만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고순대) 소속 고태협(37) 경장도 마찬가지다. 고 경장은 이번 설 연휴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다. 고향은 전남 무안. 2014년 고순대로 발령난 이후 설 연휴에 고향에 가 본 적이 없다.

고 경장은 “외동아들이라 부모님이 많이 기다리시죠. 고향에 내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 경찰인 만큼 고향에 못 내려가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부모님도 이해를 하세요. 부모님은 명절에 아들이 못 내려오는 이유가 ‘경찰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아쉬운 것을 묻자 “지난해 11월 태어난 아들과 세 살된 딸아이의 재롱을 부모님께 못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동안 투입되는 고순대 인력은 총 375명이다. 이들에게 허용된 휴일은 6일 단 하루에 불과하다. 교통사고 처리와, 정체 해결, 고장 차량 안전 조치 등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고순대의 일이다.

그래도 고 경장은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귀성객들, 휴게소에서 웃고 있는 가족을 만나면 많이 부럽죠. 하지만 그 아쉬움을 덮을만큼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느낀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근무기간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는 손가락이 절단된 두살 남자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해 무사히 접합수술을 마치게 한 일을 떠올렸다. 당시 아이는 농기구에 엄지손가락이 잘려 전남대 병원에서 수술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는 링거를 꽂은 아이를 승용차에 태우고 전남대 병원에서 경기도 광명의 접합 전문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속도로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고 경장은 “교통 정체가 발생했어요. 아이가 시간안에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손가락이 괴사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순찰차에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며 갔습니다”며 “다행히 시민들의 양보로 제 시간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고 회고했다. 고 경장은 또 단체로 식중독에 걸려 고속도로 갓길에 주저 앉은채 복통을 호소하는 가족들을 병원으로 이송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 경장은 설 연휴때 여느집처럼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인터뷰가 끝난 후 돌아서는 기자를 다시 불러세웠다. 그는 “설 연휴 때 다른 부모들처럼 함께 못 놀아줘서 항상 미안하지만 아빠는 누구 보다 떳떳하게, 누구보다 보람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란 사실도요”라고 말했다.

박병국 기자/c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