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모토로라, 코닥, 소니…
이들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몰락한 기업으로 늘 한데 묶여 언급된다. ‘휴대폰 왕좌’에 올랐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해 쇠락했고,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한 코닥은 필름 시장에 안주해 결국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변화에 대한 둔감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 역시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는 ‘환경 규제’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중국 정부마저 친환경 자동차 생산을 장려하며 환경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전기ㆍ수소차 생산 로드맵을 발표하며 ‘변신’을 선언했다. 2025년까지 80개의 전기ㆍ수소차를 도입해 전체 신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5%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폴크스바겐의 친환경차 비중이 약 1%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무리한 계획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시작된 마당에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평가다.
현대차 역시 수소차 분야에 대한 투자확대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약 8조원을 투자하고 5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향후 5년간 R&D와 경상투자 등에 약 30조6000억원을, 자율주행 등 미래 신기술에 약 14조7000억원 등 총 45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내수 소비둔화와 미국과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 등으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역시 기업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친환경과 자율주행 등 미래 먹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다시 ‘칼’을 빼들었다. 엘리엇은 ‘전가의 보도’처럼 이번에도 배당확대 카드를 앞세워 현대차그룹에 대한 파상공세에 나섰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우선주를 포함해 배당금 5조8000억원과 2조5000억원을 각각 요구했다. 이는 주당 2만1967원, 2만6399원 배당에 해당하는 액수다. 회사 측의 결의안인 4000원에 비해 5~6배 많다. 특히 엘리엇이 요구한 현대차 배당금 5조8000억원은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의 353%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5년간 현대차의 배당금 총액보다도 많다.
단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엘리엇의 제안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현대차의 M&A 여력의 하락은 물론 기업가치의 하락으로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이미 수소차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은 작년에서야 ‘수소경제’라는 구호가 등장하며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엘리엇의 주장대로 단기간 배당금의 급작스런 증가는 결국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현대차가 추진하는 미래 투자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주주활동은 근본적으로 기업가치의 개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엘리엇이 주장하는 배당확대는 단기적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주겠지만 당장 새로운 먹거리를 고민하는 현대차로선 향후 미래가치의 하락을 걱정하게끔 하는 내용이다.
엘리엇은 오는 22일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와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주주들에게 발송하며 우호세력 결집에 나섰다. 그러나 엘리엇이 기업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리거나 단기적 차익 회수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일 경우 다른 기관투자가들 역시 쉽게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주주활동이 반드시 기업가치의 제고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업가치 개선이라는 명분이 명확할 때 비로소 일반 주주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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