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 -산부인과 측 “법 개정 전 정확한 지침 필요” -일부 의료인 “생명 존중에 대한 배려 부족”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사회적으로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갈렸던 낙태 처벌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의료계는 법 개정 전 정확한 지침으로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부 의사들은 이번 헌재 결정에 아쉬움을 나타내며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기는 하지만 바로 무효화하면 법의 공백이 생기거나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수 있어 국회에 시한을 주고 법 개정을 유도하는 결정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모두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7명은 낙태 처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임신·출산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해당 조항이 임신기간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모자보건법에서 일부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여성에게 고통을 가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관들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전의 낙태에 대해서만 여성이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로써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시 범죄로 규정됐던 낙태는 66년 만에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됐다. 낙태죄는 지난 2012년에도 합헌 결정이 났다.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정에 의료계는 향후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지난 해 8월 복지부가 낙태를 실시한 의사는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규칙을 시행하자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를 전면 거부 선언을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는 11일 성명서를 통해 모자보건법은 1973년 개정된 이후에도 의학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해당 임신부에게 가혹한 입법이라며 OECD 36개 국가 중 30개국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는 낙태의 찬반을 선택할 수 없지만 모자보건법에서 의학적으로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여성과 태아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전념할 것”이라며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국민과 진료실에서 발생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한 지침을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서 의사가 낙태를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는 규칙을 폐기하고 의사의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낙태에 대한 책임을 여성과 의사에게만 지우지 말고 남성에게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측 관계자는 “임신중절수술을 원할 경우 임산부와 충분히 상의해 결정할 것이고 약물복용으로 태아 기형이 우려되어 수술을 원하는 경우에도 임신 중 약물복용 상담을 해 약물 안전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부인과 의사들과 달리 종교계처럼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은 “이번 헌재 판단은 생명 존중에 대한 배려나 고민한 흔적이 매우 부족한 것 같다”며 “아무런 힘도 없고 약자인 태아들이 죽음에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오히려 현재보다 더 엄격한 낙태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이제는 법안 개정이 중요하다. 국가가 보다 엄격한 낙태기준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가치가 탑재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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