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實證)은 기술개발(R&D)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지 검증하는 과정이다. 내구성, 안전성을 살피는 시험 분석, 인증 획득, 성능 평가 과정이 여기에 포함된다. 시제품을 사업화하고 양산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단계인 셈이다. 실증과 관련한 몇 가지 가상의 장면을 살펴보자.
장면 #1. 디스플레이 부품과 장비를 만드는 A기업은 외산에 의존하던 일부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하고 수요 기업에 사용해 줄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관계를 형성해 온 기존 거래선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납품 업체를 굳이 변경하기가 어렵고, 도입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부품을 검증하는 데 드는 예산을 부담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수요 기업의 입장이다.
장면 #2. B기업은 몸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든다. 초기에 비싼 외국산 부품을 들여와 만들었는데 3D 프린팅으로 부품을 제작하면서 개발 기간은 짧아지고 제작 단가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3D 프린터로 만든 부품의 안전성을 검증할 곳이 없어 제품 판매에 제동이 걸렸다. 실증에 필요한 시설도 없고, 산업별로 인증 체계가 달라 해당 제품의 상용화 및 대중화는 멀어 보인다.
위 사례처럼 R&D 과정에서 수요 기업의 신뢰성 확보나 제품의 안전성 검증을 위해 실증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술 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최종 소비자 요구가 까다로워지는 점도 실증이 강조되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실증은 더욱 부각되는 중이다.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해서는 R&D 단계부터 수요 기업(대기업)과 연계한 실증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커진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접목해 등장하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출시 속도를 높이려면 실증 기반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실증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은 R&D 단계와 비교해 결코 만만치 않다.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실증의 필요성을 알지만, 자체 구축 여력은 부족한 형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주요 선진국은 자율주행차, 드론 등 신제품 테스트를 위한 실증 인프라를 강화하는 추세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실증 기반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기업의 신시장 적기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까지가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R&D 장비 중심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온 ‘기반구축 1.0’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사업화 지원, 신시장 진출 지원을 목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기반구축 2.0’ 시대를 열어야 한다. 기술의 빠른 변화에 기업이 대처해 나가는 데 있어서 꼼꼼한 실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반드시 사업화 중심의 기반구축, 실증 중심의 기반구축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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