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이익공유제…명백한 자발 참여 아니면 세일 비용 절반 부담해야

공정위 “백화점 주도 세일은 사라져야…입점 업체가 이끌어야”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앞으로 백화점, 아울렛 등 대형 유통업체는 세일 행사를 할 때 판촉 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만약 비용을 분담하기 싫다면 입점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세일에 동참했다는 것을 인증하고, 사전에 각 업체들과 함께 행사에 대해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을 개정,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다만 세일행사의 비용 분담과 관련된 내용은 코리아세일페스타 일정, 유통업체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그간 백화점에서 정기세일을 할 때 입점 브랜드가 제품 할인에 따른 가격 인하분을 책임져왔다. '자발'이라는 형식적인 모습을 갖췄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행사 전 입점 브랜드로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대규모유통법에서 명시한 예외 사유 '자발성'을 갖췄다고 보고 입점 브랜드에 모든 판촉 비용을 떠넘겼다.

공정위는 이러한 관행을 이른바 '갑질'이라고 판단했다. 백화점이 입점 브랜드의 팔을 꺾어 강제로 할인행사에 동참하도록 강요한다고 봤다. '자발'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백화점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원치 않는 행사에 참여하는 납품 업체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기업인 백화점과 중소기업인 납품업체 간 이익공유가 필요하다고 봤다. 세일 행사를 하면 백화점은 수수료 매출이 증가하는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가격 할인분을 부담하는 납품업체는 마진 감소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돈 버는 쪽이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게 공정하다는 취지다.

새 지침의 골자는 백화점이 악용하고 있는 '자발성'이라는 예외규정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세일에 동참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더라도 납품업자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참여를 독려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예전처럼 공문만으로 '자발성'을 입증할 수 없다. 독자적으로 행사 참여 여부, 시기를 결정하고 유통업체와 충분한 협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법에 명시된 대로 백화점은 최소 50%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공정위는 장기적으로는 유통업체 주도의 정기세일이 사라져야 한다고 시사했다. 세일은 입점 브랜드가 이끄는 행사가 돼야 한다는 취지다.

고병희 공정위 유통정책관은 "입점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세일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며 "그렇지만 백화점이 세일 행사를 하면 참여를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규모유통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입점 업체 주도의 세일 행사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서는 입점 브랜드가 의도적으로 정상가를 높이 책정한 후 할인 폭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도 유통업체와 납품업체는 사전에 소비자가격을 협의하고 있고, 다른 유통 채널을 통해 가격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세보다 가격을 부풀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일에 동참하지 않는 입점 브랜드는 백화점 주도의 판촉 행사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있다.

이 지침은 지난 2014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는 30일로 기한이 종료됨에 따라 공정위는 3년 더 연장했다. 내용을 추가하면서 기존 지침을 폐지하고 다시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