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첫패소…이란에 730억 배상

론스타도 5조3000억원 규모

지연이자 합치면 천문학적 액수

사건별로 로펌 수임해 대응해야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 에서 처음으로 우리 정부의 배상책임이 인정됐다. ISD 규모가 12조원대로 불어나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영국고등법원은 이란 다야니 가문과 한국 정부간 ISD에서 기존 중재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730억원을 지급하게 됐다.

첫 ISD 배상이 확정되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소송 금액이 5조3000억원에 이르는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의 ISD는 가장 큰 부담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매각을 지연하고 국세청에서 부당한 과세를 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꾸렸지만 개별 사건 마다 외부 로펌을 선임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사안별로 대응하는 데 그치다 보니 정부 차원의 ISD 소송 노하우를 축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법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범정부 합동조직 ISD 대응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론스타 ISD에는 법무법인 태평양, 하노칼 사건에는 김앤장, 엘리엇을 상대로는 광장을 대리 로펌으로 선임했다. 이번에 배상책임이 인정된 다야니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율촌은 버자야 사건을 대리한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 송기호 변호사는 “ISD 사건들은 국가공공정책의 영역으로 공적인 대응 능력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법무공단 등을 활용한 공적인 대응을 통해 ISD대응능력을 공공영역에서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정부와 로펌이 합동으로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규제와 간섭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투자자 측은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으나 정부는 대응할 수 있는 방안에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소송 전략 등을 고려했을 때 비밀에 붙여야 하는 지점 등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정치적 목적 등을 위한 간섭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는 여러 10여건이 넘는다. 올해에는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이 제주 예래휴양형 주거단지 개발사업 관련 국토부 산하 기관의 설명이 부재했다는 이유로 4조4000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미국계 부동산개발회사 게일 인터내셔널도 2조3100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인천 송도 국제업무지구 개발 과정에서 인천광역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부당한 계약 체결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합계 1조원에 육박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ISD, 현대오일뱅크 주식매수 및 매각과정을 문제 삼는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측 하노칼의 1900억원 규모의 ISD,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을 문제 삼는 다국적기업 쉰들러의 3500억원 규모의 ISD도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우리 정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분쟁은 2010년 11월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 소유주 다야니 가문이 대우일렉을 인수하려다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대우일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다야니 측은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한국 채권단에 578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하고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LOC불충분을 원인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총필요자금 대비 1545억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다야니 측은 2015년 9월 국제중재판정부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과 이자 935억원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ISD를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 한국 정부가 계약금과 지연 이자 등을 더해 730억원을 다야니 측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판정 취소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