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마켓엔 쌀·휴지·세정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밤샘 줄서기도 예사다.” 홍콩 거주 지인이 보낸 문자 내용이다.
지구촌이 ‘새로운’것에 흔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2019-nCoV. ‘신종’이란 말은, 이 바이러스를 우리가 모른다는 의미다. 신종을 의미하는 ‘노벌(novel)’이란 단어는 라틴어 ‘노바(nova)’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는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한, 충격적인, 새로운’이란 뜻이다. 전 세계가 이 ‘예상할 수 없는 새로움’에 속수무책이다.
새 아파트, 새 차, 새 명품가방 등 온통 새로운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혀 낯선 새로움’은 공포를 ‘움’트게 하고 있다. 산을 갈아엎고 도시가 들어서면 산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 체계가 열리면서 인간을 공격하게 되고, 기후변화로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 체계도 같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위협, 신종 코로나 사태는 ‘국민국가’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정부가 보낸 세 번째 임시 항공편이 우한 교민 140여명을 태우고 12일 새벽 귀국했다. 이번엔 중국 국적 배우자, 부모, 자녀도 데려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임을 이번 ‘우한’ 교민 철수에서 새삼 일깨워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한국인이라는 의미엔 외국인에 대한 배제 의미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한다. 한국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에 비하면 엄청난 특권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진태원은 최근 출간한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비판없는 시대의 철학’에서 “근대 국민국가는 전체주의적 국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며, 국민 모두를 예속시키고 외국인을 비롯한 타자들은 항상 배격하는 억압적이고 패권적인 국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개인이 국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는 개인은 국가를 통해 성립하고 국가를 통해 생존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 안에서, 정치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국민국가’의 성격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각국은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초비상이 걸렸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러시아·몽골·베트남·네팔은 국경을 폐쇄했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국경은 ‘정상적인’ 법질서에 대한 통제와 보증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장소다. 국경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 법치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반(反)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화 이후 인류는 초연결 세계를 말해왔다. 하지만 이 초연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자국민 안전이라는 최우선 가치 앞에서 단칼에 초장벽으로 변했다.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이라는 표현은 절묘하다.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국 정부의 결정은 그것이 전쟁의 다른 이름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예외’가 모든 정상적인 것을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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