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명제조사서 46만장 구매

도착제품 녹슬고 곰팡이…사용불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란이 터진 후 사업가 A씨는 거래처로부터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 국내 유력 전자제품 기업에 글라스를 제조하는 1차 협력사 공장에 공급할 산업용 마스크에 대한 요청이었다. 이후 지난 4일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마스크를 판매하기로 한 업체는 국내 유명 마스크 제조 업체인 B사였다. C사 측에서 보낸 N95 산업용 마스크의 샘플 사진들과 품질관리 시험성적서를 받고 안도했다. 바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필요한 물량은 25만장이었다. 하지만 C사 측은 “남은 재고 전량을 구매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고 말했다. C사가 제시한 46만9200장 마스크 전부를 8억7740만을 주고 구매하기로 했다. 매점매석이나 덤핑이 아닌 부가세까지 다 지불한, 장당 80원 이익이 남는 거래였다.

4일 오후 6~7시께 매매 대금을 입금하고 B사에 물류 창고를 개방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본사 직원들이 나와 물류 창고를 열고 마스크 상자를 옮겼다. 이튿날 아침. 마스크를 옮기던 중 문제를 발견했다. 250여 박스에 달하는 마스크 약 5만장에 대한 1차 검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마스크가 모두 오래돼 곰팡이가 피었거나, 마스크에 사용된 스테이플러가 녹이 슬어 있었다. 유통기한도 2007년이거나 2010년인 제품들이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 마스크들만 전량 폐기해도 이미 회사에는 적자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문제가 된 마스크들은 환불해 주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그 때까지 놓지 못했다.

같은 날 오후, 2차 검수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구매한 마스크 전량이 사용할 수 없는 ‘폐기물’ 수준의 상태였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마스크가 확인 없이 그대로 중국으로 갔다면, 국가적 망신이자 국제적 갈등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일은 불량 제품인 마스크 전량에 대한 환불 조치였다. 사업 확장을 위해 집까지 담보로 잡았고, 거래처로부터 7억원 가량의 선지급을 받은 터였다. 거래처의 7억원 돈만이라도 어떻게든 건져 내야 했다. 지난 6일 판매대행사 측 직원 2명이 ‘마스크가 100% 불량이고 폐기시켜야 한다’고 인정하면서 환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이후 C사 측은 이 문자 한 통을 보낸 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큰일을 당한 거구나’란 생각이 커졌다. 겁이 많이 났다. ‘회사 문 닫아야 하는 건가’부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 얘기가 남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난 14일 B사가 지자체에 KF94 마스크 1만장을 기증했다는 기사를 봤다. ‘저렇게 선한 기업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어서 분노에 몸이 떨리고, 억울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경북 상주경찰서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죄로 고소장을 제출한 다음날이었다. 헤럴드경제는 B사와 C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 글은 산업용 마스크 구매를 위해 8억여 원의 돈을 지불했지만, 전량 폐기 수준의 마스크를 받고 아직 환불을 받지 못한 A 씨의 사연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박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