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섭다는 중2.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반항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2. 그래서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을 ‘중2병’에 걸렸다고 한다나.
내 딸이 바로 그런 중2다. 딸 키우는 아빠는 다 그렇겠지만, 그나마 내 딸이랍시고 ‘어디로 튈지는 최소한 안다’고 자신했건만 그것이 틀렸음을 확인한 사건이 생겼다.
한 2주전 쯤이었을게다. 대뜸 딸이 “아빠, 나 파마할래”라고 한다. “뭐? 중학교 2학년이 파마한다고? 안돼, 정신이 있어 없어?” 생각이고 자시고 없다. 내 상식으론 중학생이 파마를 한다는 게 도저히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빠하고는 이야기를 못하겠어. 안통해.”
딸의 반응이 거칠다. 자기 방문을 쾅 닫더니, 도통 거실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거, 너무 잘라서 말했나. 마음이 영 거북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가방을 멘 딸이 학원으로 가려고 방을 나온다.
“학원 가니? 잘 갔다와.” 싸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천둥을 치듯 요란하다. 학원에서 돌아왔을때도 마찬가지. “잘 다녀왔어?”라고 하자, 대꾸도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좀 심했나. 심기가 불편하다.
주말 당직을 서고 온 아내가 자초지종을 듣더니, 일단은 “잘했어”라고 내 편을 들어준다.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 할 수 없지, 뭐. 양보해야지. 노크 후 딸 방문을 살짝 연채, “다른 애들도 파마 하니”라고 물었더니 “예” 한다. “그래, 그럼 아빠가 카드 줄테니 엄마랑 가서 파마하고 와. 기왕 간 김에 엄마도 머리 하고….”
카드를 전해줬더니 금세 “정말?”하고 좋아한다. 아내도 철없이 덩달아 신이 났다. 모녀는 그렇게 나갔다. 잠시 후 휴대폰에 띵동하고 소리가 나더니 15만원이 찍힌다. 나중에 들으니 딸 파마비 7만원, 아내 머리 손질비 8만원이란다. 그렇게 전쟁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며칠 뒤 터졌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모녀 분위기가 싸늘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딸 아이가 파마한 것을 선생님한테 들켰단다. 선생님은 “머리를 다시 스트레이트로 풀어와”라고 했단다. 딸 아이는 울며겨자먹기로 자기돈 7만원을 들여 머리를 폈단다. 그런 일로 모녀는 말다툼을 했나보다. 뻔하다. 엄마한테 7만원을 달랬다가 거절 당했겠지.
다음날 새벽. 출근길 현관을 나서기 전 자고 있는 딸 아이 방으로 갔다. 딸 책상 위에 7만원을 얹어놨다. 돈 위엔 메모 하나를 남겨놨다. “우리 딸. 파마해 봤으니 됐지? 머리 편 값 아빠가 줄게. 해봤으면 되는거야. 대학생되면 아빠가 얼마든지 파마해줄게. 그리고, 그리고…. 음, 아빠 생각은 우리 딸은 생머리가 정말 예쁜 것 같아.”
한창 일하고 있는데 카톡 문자가 날아온다. “아빠 너무 고마워요! 진짜 많이 사랑해요.” 딸 아이다. 곧이어 또 온다. “감동 받았어요.” 잠시 후 아내한테도 전화가 온다. “우리 딸이 일어나자 마자 울고불고 하길래 놀랐어. 아마 당신이 그렇게 하니까 정말 감동받은 모양이야.”
참, 딸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다. 대한민국의 딸 가진 아빠들, 모두 나와 같지 않을까.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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