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여행을 사랑하는 작가 최정동은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발자취를 따라 독일을 여행하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펴냈다. 작가는 바흐가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 열여덟살 때 묵었던 하숙집 등을 담은 사진과 함께 바흐의 일생, 바흐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는 중학교 음악교실에 걸린 초상화를 통해 바흐를 처음 만났다. 화난 베토벤, 총기 넘치는 모차르트, 인자한 하이든과 달리 바흐는 쏘는 듯 강하고 차가운 눈빛에 마주보면 속마음을 들킬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작가는 20년 넘게 바흐의 음악을 듣고 음반을 수집하면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2011년 작가는 지체없이 독일로 떠나 바흐가 가족과 함께 살았거나 잠시라도 방문했던 모든 도시를 찾았다.
여행은 바흐가 태어나 이틀 뒤 세례를 받은 튀링겐주(州)의 아이제나흐성 게오르크 교회 세례받이에서 시작됐다.
바흐의 증조부는 거리 악사, 아버지는 아이제나흐시의 음악감독으로 집안에는 항상 음악이 흘렀다. 여덟 형제 중에 막내였던 바흐는 열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 오르가니스트였던 큰형 크리스토프 밑에서 자라며 음악을 배웠던 바흐는 합창 장학생으로 북독일 명문학교인 뤼네부르크의 성 미하엘 학교로 홀로 유학을 떠났다.
바흐는 뤼네부르크에서 2년을 보내고 드레스덴 등 몇몇 도시를 방문한 것 외에는 일생을 튀링겐 지역에서 머물렀다.
시골음악가로 살았던 바흐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은 아내 마리아의 죽음이었다. 괴텐 궁정악장으로 일하던 때였다. 작가는 당시 바흐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꼽았다. 이 곡은 바흐 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통렬한 슬픔을 담고 있는데, 아내 마리아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길었던 작가의 여정은 바흐가 잠들어있는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제단 아래 무덤에서 막을 내린다.
작가는 “바흐의 발자국은 흐릿하거나 군데군데 지워져 있었다”며 “그는 무반주 첼로처럼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고, 평균율처럼 그를 찾아가는 길은 끝이 없음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신수정 기자/ssj@herad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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