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오는 28일까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예년과 같은 연말 풍경은 볼 수 없게 됐다. 모처럼 친구, 가족들과 모임을 하거나 휴가 떠날 생각에 들뜰 시기인데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자주 가던 카페, 헬스장에 걸린 ‘영업 중단’ 팻말이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2020년은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들에 참으로 어려운 해였다.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세계 공장들이 연쇄적으로 멈춰 섰고,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경기침체와 얼어붙은 소비심리 여파는 고스란히 기업에 돌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7.2%포인트나 떨어진 -4.4%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자와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이뤄지는 무역 분야는 타격이 특히 컸다. 우리 무역업계도 주요국의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조치로 인해 큰 어려움을 맞았다. 바이러스 유행 초기 중국의 부품 생산 중단으로 공급위기를 겪었다면, 확산세가 한창일 때는 글로벌 소비 급감에 따른 수요위기에 직면했다. 지금은 컨테이너선, 화물기 부족으로 인한 물류대란이 문제다. 실로 산 넘어 산이다.

첩첩난관 속에서도 우리 수출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필자가 몸담은 무역협회는 해마다 12월 초 ‘무역의 날’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하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176개 늘어난 1505개사가 우수한 수출 실적을 거둬 ‘수출의 탑’을 받았다.

특히 한국의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기업들이 두각을 보였다는 점이 의미가 깊다.

올해 최고액 수출의탑은 ‘30억불 탑’으로 2차전지, 첨단 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성SDI가 받았다. LG생활건강은 프리미엄 화장품으로 아시아와 미국 시장을 공략해 ‘10억불 탑’을 받았다. 코로나19에도 ‘K-배터리’ ‘K-뷰티’ 등 한류의 돌풍이 거셌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중소기업들의 약진이다. 올해 최소 단위 탑인 ‘백만불 탑’은 지난해보다 164개사나 늘어난 586개사가 수상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바이어들의 주문 취소가 이어지고 해외 전시회와 출장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에서 올린 값진 성과다.

식품포장기계를 제조하는 한 기업은 세계적으로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하는 추세를 빠르게 포착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백만불 탑을 수상했다. 무대 치를 생산하는 회사는 차별화된 무대 제어기술로 미개척 시장인 동남아를 공략해 올해 첫 수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K-방역’ 제품 수출에도 중소기업의 공이 컸다. 진단키트, 마스크, 손소독제 등 방역과 관련된 소비재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수출했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에 고급 신사복을 납품하는 한 기업은 주문이 줄자 남는 원단으로 마스크를 만들었는데 우수한 품질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북미 진출에 성공했다.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손소독 티슈로 미국 아마존에서 인기를 끈 기업도 있다.

이들 기업은 대면 미팅 대신 화상상담회를 통해 바이어를 만나고 e-메일과 소셜 미디어로 의사소통을 이어갔다고 한다. 비대면의 한계에도 일부는 기존 파트너와 쌓아둔 신뢰도와 장기간 연구·개발(R&D)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2차, 3차 수주에 나설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변화에 발맞춰 신제품 개발, 신시장 발굴에 나서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다.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우리 기업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올해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 우리나라가 4년 연속 수출 5000억달러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무역인들에 존경을 표한다.

내년에도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유연함과 민첩성을 갖춘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빛나리라 믿는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