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에 위치하고 있는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며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 전한다.

선덕여왕 12년(643년), 당나라에서 수행을 마친 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돌아온 자장율사는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적멸보궁을 창건했다. 그리고 그 뒤 지금의 절터에 월정사를 지었는데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다.

월정사는 몇 번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전소되었다가 1964년 이후 중건하였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팔각구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약 1㎞가 조금 넘게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곳 전나무의 나이는 평균 80년 이상이고 1,700여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키가 큰 전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다.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 팔을 양쪽으로 뻗고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산림욕을 하는 듯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 숲속에 작은 초막을 하나 짓고 살 수 있다면 몸이 몇 배는 건강해질 것 같다.

원래 소나무도 함께 있던 길이었는데 전나무의 아름다운 기세에 눌려 자리를 피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꽃을 피우는 나무도 아닌데 그저 울창한 잎과 커다란 키, 아름드리 둥치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이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참회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은 듯도 하다.

숲 왼쪽으로는 졸졸 물이 흐르는 월정계곡이 있었다. 물도 맑고 물소리도 정겹게 들려왔다. 산책길에는 가끔 다람쥐가 바삐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아마 자신을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터득한 모양이다. 한 아이가 신기한 듯 손바닥 위에 도토리를 올려놓고 다람쥐를 부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다람쥐가 뽀로로 달려와 손 위에 앉아 도토리를 까먹고 있었다. 아이와 다람쥐의 모습이 자연과 하나인 듯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곳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단풍이 완전히 지지 않았다. 전나무 틈 사이사이로 키 작은 단풍나무가 울긋불긋 물들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단풍의 색깔은 저리도 빨간지,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단순한 빨간 색이 아니어서 물감이나 크레파스 색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들 것 같았다.

간혹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고목도 보였다. 2006년에 쓰러진 전나무 고사목은 가장 오래된 전나무였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되어버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살아서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주고 죽어서는 포토존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보이는 고사목은 전나무숲길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거진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서 천왕문과 누각 아래를 지나면 천년 고찰 월정사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국보 제48호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은 자장율사가 월정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학자들은 이 석탑을 고려 시대의 탑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고려 시대에 와서야 다각 다층석탑이 보편적으로 제작되었으며, 하층 기단에 안상(眼象)과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층 기단과 몸돌에 괴임돌이 끼워져 있기 때문이다. 탑의 높이는 약 15.2m로, 다각 다층석탑으로는 가장 높다.

석탑 앞에는 어른의 키와 비슷한 1m 80cm 정도의 석조보살좌상이 있는데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정중하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두 손을 가슴에 끌어모아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월정사를 둘러보다 소원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몇몇 사람이 소원탑을 돌면서 자신들의 소망,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중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도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기원하는 분 옆에서 필자도 같이 소원을 빌었다. 한참 후 무엇을 그렇게 간절하게 비느냐고 물었더니 곧 아들이 수능을 보게 된다고 했다. 부모가 저렇게 간절한 불심으로 자녀의 앞날을 기원하는데 자녀가 잘 풀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물어가는 가을을 한껏 머금고 있는 월정사를 뒤로 하고 평창군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평창읍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시장은 1955년 재래시장 건물을 갖추고 시장으로 등록하였으며 그 뒤로 매달 5일과 10일에 장이 서고 있다. 민속 5일장 특성화시장으로 선정되어, 상설시장과 5일장이 함께 열린다고 한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평창버스터미널에서 시장에 이르는 길에 노점이 늘어선다. 장날에는 감자와 나물 등 평창의 특산물과 의류, 생선, 잡화, 주방기구, 건어물, 농산물, 과일류 등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메밀을 이용한 음식과 올챙이국수, 꼴두국수 등이 인기가 있으며 메밀을 얇게 부친 메밀부치기는 1970년 평창시장에서 처음 팔기 시작하여 강원도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평창시장 입구에는 아주 오래된 전통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주인장은 칼을 직접 두드려 만들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농기구를 만들며 외길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한 시장 상인은 이 대장간이 아버지 때부터 있던 대장간이라고 귀띔해주었다. 투박한 손으로 날렵하게 칼을 두드려 만드는 기구들은 하나같이 예술작품이었다.

대장간을 나와 메밀전 골목으로 들어섰다. 메밀은 평창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특산 먹거리이다. 그중 3대에 이어 전집을 하는 곳으로 꽤 유명한 메밀이야기 집으로 들어갔다. 가마솥 뚜껑에 메밀전병을 만드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병은 메밀전에 김치볶음 등의 재료를 넣어 돌돌 말아 만드는데 메밀의 순한 맛에 톡 쏘는 김치볶음이 잘 어울렸다. 메밀반죽에 쑥이나 강황가루를 넣어 반죽해 녹색과 황색을 자랑하는 전도 있었다. 또 들기름을 두른 부침용 솥뚜껑 위에 세로로 길게 찢은 절인 배추와 쪽파를 몇 가닥 올려놓고 메밀 반죽을 부어 종잇장처럼 얇게 구워내는 메밀전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메뉴였다.

그 외에도 감자전과 메밀묵, 메밀 콧등치기 국수, 메밀 비빔국수, 메밀 묵사발, 메밀 묵무침 등 다양한 메밀 요리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음식을 국산으로 감당하지 못해 중국산 통메밀을 들여와 직접 도정을 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쪽에서는 할머니가 수수부꾸미를 꾹꾹 눌러 만들고 계셨다. 모듬 메밀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잠시 후 평창 사미인곡 막걸리 한 병과 푸짐한 모듬 메밀전, 그리고 직접 담근 달랑무김치가 나왔다. 막걸리잔은 양은그릇으로 막걸리와 잘 어울렸다. 막걸리와 안주 삼아 먹다 보니 메밀전은 금방 동이 났다. 내친김에 메밀 빈대떡을 하나 더 시켰다. 이곳은 포장도 가능하고 전국으로 택배 발송도 가능하다고 했다. 전화로 주문하면 10시간 후에 메밀전병과 메밀전을 택배로 받아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오대산에서 수확한 산나물로 푸짐한 밥상을 차리는 밥집도 눈에 띄었다. 마당 가득 쌓아 놓은 장작으로 지어내는 밥과 나물의 담백한 맛, 따뜻한 숭늉 한 그릇까지 잊지 못할 밥상이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주로 메밀과 나물에 관계된 것을 찾는 반면 현지인들은 꽈배기 도넛이나 떡볶이, 순대 등 평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둘러보았던 장소를 하나 하나 떠올려보았다. 육백마지기, 청옥산 은행나무숲, 바위공원, 평창시장, 월정사와 전나무숲……. 3대가 이어온 서울식당에서 먹었던 강원도 산채나물밥과 조선된장, 묵사발, 그리고 숙소인 캔싱턴호텔 내 캠핑장에서 구워 먹었던 평창한우, 시장에서 사 먹었던 메밀전병 등…….

그러나 아직도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다. 최근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숲속의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는 원래 일정에 있던 곳인데 문을 여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헛걸음을 했다. 또 이효석 문학관과 효석 달빛언덕 등도 평창에 오면 꼭 둘러보아야 하는 곳인데 시간이 없어서 들르지 못했다. 데이지꽃, 황화코스모스, 메밀꽃을 비롯해 평창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또 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냥 지나치는 곳도 많지만,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에 등록되는 리스트가 있다. 평창이 그런 곳이었다. 단순히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장소, 지대가 높고 추운 지역으로만 생각되었던 평창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평창시 관계자와 주민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글/전정희 작가


r2yj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