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부터 서울시와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운영

피해자 상담한 이희정 나무여성인권상담소 팀장 인터뷰

‘n번방’ ‘박사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폭력 대응 공론 활발

“상담·수사·소송·가해자 처벌…全단계 걸쳐 피해자 지원 필요”

“가해자에 대한 국가의 처벌, 피해 최소화 시스템 만드는 과정”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지난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게 아로새겨진 성범죄는 텔레그램 내에서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n번방’과 ‘박사방’ 사건입니다. 최근까지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 잡아들인 관련 범죄 인원만 3500여 명이라고 하는데요.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진행된 디지털 범죄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했죠.

n번방 사건은 ‘디지털 성폭력’의 일종입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성폭력의 파급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피해자들을 구제할 대책에 대한 공론화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2019년 9월부터 문을 연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이하 지지동반자)’는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운영 중인 대표적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 구제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지지동반자는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1년간 피해자 162명(중복 포함·사건 1471건)을 지원했습니다. 소장을 제외한 상담사 인력은 3명으로 소수지만, 상담사 한 명당 한 달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15명가량을 맡아 피해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불법 촬영물 유포(상대방의 동의없이 촬영한 영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는 행위), 온라인 성 착취(그루밍·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얻어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가 피해 상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 이희정 나무여성인권상담소 팀장을 만났습니다. 이 팀장은 지지동반자 사업이 시작된 당시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피해자들을 상담하며 구제 과정 전반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데요. 이 팀장이 말한 표현 중, 제가 생각하기에 인상 깊었던 10가지 대목을 짚어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서울시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를 운영하고 있는 나무여성인권상담소의 이희정 팀장. 이 팀장은 "피해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상담과 수사 지원이 상담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서울시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를 운영하고 있는 나무여성인권상담소의 이희정 팀장. 이 팀장은 "피해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상담과 수사 지원이 상담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1. “영상 재생 횟수만큼, 피해자의 고통은 반복”

여러분이 지나가다 알지도 못하는 행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당장 아픔은 있겠지만, 폭행 당할 당시 기억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폭행당할 때 영상을 누군가 찍어서 인터넷상에 올렸다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여러분은 본의 아니게 해당 영상을 반복해서 봐야 할 것이고, 볼 때마다 당시 충격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과거 연인 관계였던 사람이 동의 없이 불법 촬영을 해 서로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경우도 이와 같다는 게 이 팀장의 지적입니다. “불법 촬영물을 돌려보는 사람들이 그 영상을 재생하는 수만큼이나 피해자의 아픔은 반복될 수 있다”고 이 팀장은 말했습니다.

2. “피해자가 자신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봐야 해 난감해 질 수도”

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경우 한시바삐 영상을 지우고 싶을 겁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음성적인 사이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영상이 공유되기 때문이죠. 피해자는 무엇보다 향후 빠른 수사를 위해서라도 관련 영상을 증거물로서 습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그런 불법 영상이 공유되는 음성적인 사이트를 찾는 것부터 어렵고요. 날로 달라지는 불법 촬영물 유통 형태로 인해, 웹상에 흩어진 영상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것도 보통 공력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영상을 찾기 위해 ‘가해자의 시선 혹은 그 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자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가장 곤혹스러운 대목입니다. 가해자들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이들은 불법 촬영물에 이름을 붙여 공유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그 영상물의 ‘(가해자나 공유자들이 붙인)이름’을 추측해야 하는데요. 그런 과정은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상품화됐을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감하기 그지없는 것이죠.

3. “영상 삭제를 위해서는 ‘수사’라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

불법 촬영물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영상 삭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1번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영상 재생이 반복되는 만큼 피해자들의 아픔도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영상 삭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단체는 어디일까요. 이 팀장은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두 군데라고 말합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모두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당장 웹상에 올라온 영상을 모두 지우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에 영상을 이미 다운로드받은 사람이 다시 영상을 웹에 올리면, 또 다시 사태가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팀장은 경찰의 ‘수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수사를 해야 영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방법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설령 원천 차단이 쉽지 않더라도 ‘수사 중’이라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져야 해당 영상을 가진 공유자들이 쉽게 또 그 영상을 올릴 엄두를 못 내겠죠. “영상 삭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이 팀장은 말했습니다.

4. “국가가 가해자 처벌의 주체 돼야”

피해자에게 디지털 성폭력을 가한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입니다. 그런데 그 죗값을 치루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 팀장은 “가해자 처벌의 주체가 반드시 국가 기관이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 기관이 정한 법적 절차에 따른 처벌이 분명해야, 디지털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정식으로 ‘피해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 팀장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의 잘못도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국가 기관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국가 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피해자를 피해 입은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에 상담한 피해자의 연령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에 상담한 피해자의 연령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5. “‘피해자 마음 속 형량’과 ‘사법기관이 내리는 형량’이 달라…어려워”

기자가 “상담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을 때, 이 팀장은 ‘가해자 형량’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리고 싶은 ‘마음 속 형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법기관의 형량은 해당 피해자가 생각하는 마음 속 형량과 같을까요. 같은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피해자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양형 사례는 예전부터 많은 논란이 돼 왔죠.

다행히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양형기준(법률에서 정해진 형에 따라 선고할 때 참고하는 기준)은 지난해보다 강화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불법 촬영의 경우 이전에 없던 양형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재질이 나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상습적으로 제작했을 경우 최대 29년 3개월 가량 선고할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형량이 이전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선고 사례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형량이 높아진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픔을 덜어낼 수 있는 수준의 선고가 나올지도 미지수죠. “피해자가 피해를 겪었다고 말할 때 사회가 이를 외면하지 않고 가해자를 합당히 처벌하고 피해를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입니다.

기존에는 사법기관의 형량이 피해자가 바라는 형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럴 때 좌절할 피해자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 이 팀장에게 물었는데요.

이 팀장은 “지금은 당신의 사건이 남과 상관없는 별개 사건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런 무수한 개인의 사건이 모여서 국가 시스템을 바꾸게 된다. 당신의 사건은 당신 개인의 사건으로 멈추지 않는다”고 답한다고 합니다. 이어 “가해자에 대한 형량이 예상보다 낮을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가해자 처벌 자체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모두 모여 향후 발생 가능한 피해자 분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디딤돌이 된다”고 덧붙인다고 합니다.

향후 발생 가능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함께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을 이 팀장은 “연대”라고 표현했습니다.

6. “온라인 성착취 과정…친밀감 형성→의심 불식 →개인정보 확보→협박”

온라인 성 착취의 경우, 가해자들은 어떻게 접근할까요. 이 팀장은 가해자들의 접근 방식을 “친밀감 형성→의심 불식→개인정보 확보→협박”의 순서로 설명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쓰는 휴대전화를 커피숍 의자에 올려놨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 휴대전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의자 맞은편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일단 의자 맞은편에 앉은 사람부터 의심을 하겠지요. 그런데 의자 맞은편에 낯선 사람이 아니라 10년 된 친구가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친구가 훔쳐갔을 거라고 쉽게 의심을 할까요. 아마 많은 이들이 쉽사리 10년 된 친구가 절도했을 것이라고 의심하진 못할 겁니다.

온라인 성 착취도 이런 신뢰감에 기반해 이뤄집니다. 이 같은 성 착취는 주로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뤄지는데요. 많은 이는 처음에 그냥 타인에 대한 호기심 혹은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이 앱을 사용합니다.

우선 가해자는 친밀감을 깊게 형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학교생활을 얘기하며 서로 싫어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해 주는 듯한 대화를 해 나가죠. 그러다 보면 피해자 입장에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 주나”라며 의심이 들 때도 있을 텐데요. 이럴 때일수록 가해자들은 주도면밀하게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고, 본격적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게 됩니다.

물론 속이 뻔히 다 보이게 “이름과 사는 곳 등 개인정보를 알려달라”고 하진 않겠죠. 가해자는 “나는네가 마음에 든다. 친구에게 공연 티켓을 선물로 받았는데, 네가 원하던 것이다. 주소를 알려 주면 배송해 주겠다”라는 식으로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사진을 공유하기도 하죠.

가해자는 그렇게 알게 된 개인정보와 대화 단서를 통해 인터넷과 페이스북에 적힌 피해자의 신상을 더 추적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 피해자의 주소, 가족, 친구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본격적인 협박을 시작하게 되죠.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코지하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성적인 사진까지 요구해 약점을 추가로 잡고 이를 미끼로 다시 협박을 이어 갑니다.

7.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당하지 않을 수 있나”

나이 어린 미성년자의 경우 온라인 성 착취로 인한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떤 사람들은 “그 학생이 부주의했잖아. 채팅 앱 같은 데에서 함부로 사람 믿지 않았으면 그런 범죄를 당할 일도 없었잖아”라며 미성년자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이 팀장은 단호히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에게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온라인 성 착취를 하는 사람들은 채팅 앱을 통해 명확하게 자신이 노리는 연령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호감을 얻기 위한 다양한 대화 방식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들은 의심이 들지 않도록 ‘시나리오’를 미리 짜 놓고 주도면밀하게 접근합니다.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범죄자의 범행 시도 자체가 애초에 없었다면, 범죄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 팀장은 지적했습니다. ‘가해자의 의도’를 봐야지, ‘피해자의 행동’을 봐선 안 된다는 얘기죠.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에 접수된 피해 유형. 그중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온라인 그루밍이나 유포 피해에서도 수반되는 유형이라 특히 수치가 크다는 설명이다.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에 접수된 피해 유형. 그중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온라인 그루밍이나 유포 피해에서도 수반되는 유형이라 특히 수치가 크다는 설명이다.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제공]

8. “‘어떤 행동을 해야 이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나요?’…이 질문 자체가 잘못 돼”

이 팀장에게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안 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팀장은 “피해자가 안 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영상을 절대 보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으면, 이런 피해는 애초부터 생길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9. “코로나19 시대, 초등학생·중학생 온라인 성착취 위험에 더 노출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초등학생·중학생들의 온라인 성 착취 위험 노출 빈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이 팀장은 말했습니다. 오프라인 생활이 줄고, 대부분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빈도가 급속히 늘었기 때문인데요. 초등학생·중학생들이 앱을 통해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호감을 느끼면서, 사진·개인정보까지 공유해 디지털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10. “디지털 성폭력 피해 지원, 잠시라도 멈춰선 안 돼”

이 팀장은 지지동반자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성을 갖추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피해자가 처음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받고, 수사에 착수해 소송을 마치기까지 길게는 3년이란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요. 이런 긴 대응 과정에서 지지동반자 사업이 중단되기라도 해서 피해자 지원이 끊기면, 피해 당사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이 팀장은 피해 구제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매년 공모를 통해 지지동반자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지자체 차원에서 ‘디지털 성폭력 통합지원센터’를 세워 연속성 있는 구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사업인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안내문.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사업인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안내문.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